굴뚝산업 중심의 구경제에 비해 노동시장이 훨씬 유연한데다 근로자들의 평생직장 개념도 희박해져 경쟁업체에 핵심 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신경전이 치열한 것. 신경제 기업들은 특히 자사 직원들이 경쟁업체에 취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도 불사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법적 대응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상황.
▽경쟁업체로의 인력유출을 막아라〓지난달 루슨트 테크놀로지사는 시스코 시스템스로 직장을 옮긴 10명의 전직 자사 근로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이 경쟁업체인 시스코에 취업해 자사의 고유한 영업비밀을 시스코에 유출한 혐의가 있다는 게 소송을 낸 이유.
루슨트는 특히 이들이 자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기술과 영업노하우를 고용주인 시스코에 제공해 루슨트의 영업에 ‘치명적이고 되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음성 및 동영상 전송기술 개발업체인 브로드컴도 이미 인텔에 제소를 당한 상태. 인텔은 브로드컴이 전직 자사 직원들을 고용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자사에서 특정한 영업기술을 취급하던 직원들이 브로드컴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자리를 얻을 경우 불가피하게 기업비밀이 유출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심지어 벤처 캐피털 업체들 사이에서도 이같은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컬란 벤처캐피털사는 자사에서 경영진으로 일했던 한 사람이 동종업종에서 일자리를 구해 자사의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며 최근 소송을 냈다.
닷컴 기업들의 경우 핵심 신기술 한 두가지가 ‘분 초를 다투는’ 동종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느냐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영업기술의 유출〓패배’를 의미한다는 게 닷컴 기업들의 공통된 주장. 따라서 닷컴 기업들은 자사 인력의 경쟁업체 취업 움직임에 구경제 기업보다 훨씬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적 대응도 쉽지 않아〓이 때문에 근로자를 고용하면서 ‘퇴직후 일정기간 경쟁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아두는 닷컴 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 서약서가 미국의 모든 주에서 법적으로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닷컴기업들이 밀집해있는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는 고용주들이 전 직원의 타기업 취업을 막지 못한다.
물론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는 근로자들이 전 직장의 영업비밀을 현 직장에서 유출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영업비밀 유출 경로와 경위를 구체적인 증거자료로 입증하지 못하면 이들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일부 주는 ‘불가피한 유출’ 원칙을 채택, 직장을 옮길 경우 상사 또는 경영진이 전직장의 영업비밀을 유출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업체에 취업해서는 안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하급심은 최근 이 원칙을 채택해 경쟁업체 취업을 막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어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우려보다는 근로자의 직장 선택의 자유라는 기본권 보장이 더 중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