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칠레 대법원은 그에 대한 면책특권을 박탈키로 결정함으로써 집권기간(1973∼90년) 중에 그가 저지른 고문과 정적 살해 등 인권유린 행위에 대한 단죄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과 국내 정국상황을 감안할 때 유죄 판결을 받게 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아직도 피노체트 지지층이 권력의 핵심에 상당수 포진해 있다. 특히 독재정권 아래서 권력의 달콤한 맛을 즐겼던 군부 세력은 그에 대한 처벌을 반대하고 있다.
또 군정 시절 이뤄진 경제성장의 과실에 향수를 갖고 있는 기득권층 역시 피노체트에 대한 단죄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군부 최고지도자들은 대법원 판결 직후 피노체트를 방문해 “변함없이 당신을 지지하겠다”는 ‘충성 서약’을 전달하는 등 노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84세의 피노체트가 특수한 성격을 띤 이상 심리가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번 재판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스페인의 요청에 따라 그를 가택연금 조치했던 영국 정부도 건강상의 이유로 결국 사법처벌을 받기 곤란하다며 스페인으로 신병을 인도하는 것을 포기한 바 있다.
피노체트는 현재 심장질환과 당뇨병 등 질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회 내 피노체트 지지파는 피노체트가 고령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된다는 법안을 제출해놓은 상태다.
물론 칠레 내 국민정서나 국제상황은 피노체트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직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공정한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 칠레 정부는 과거 여러 차례 사법처벌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칠레 내부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재판 시작은 늦어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