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만 깊은 여운 남겨
여름에는 여름에 맞는 책을 고르면 된다. 우선 책이 사람을 압도하지 않아야 하고,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책. ‘중국상인, 그 4천년의 지혜’는 이런 기준에 자로 잰 듯 맞는 책이다. 과거 중국 거상들이 돈을 벌었던 이야기, 한순간에 막대한 부를 날려버린 이야기들이 흥미를 더해주고, 중국 상인들의 정신세계까지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이런 점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마력인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도덕적 측면에서 상인을 의상(義商), 간상(奸商), 평상(平商)으로 나눴다. 의상은 ‘의로써 이를 얻는 자세’를 갖고 있는 상인으로 의롭게 번 돈을 쓰는데도 정승같은 품위를 유지한다. 간상은 오로지 이익만을 탐하는 무리이다. 자연히 많은 비난이 따르게 되고, 간상으로 한번 낙인 찍히면 생업을 접어야 한다. 평상은 의상도 간상도 아닌 상인이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상인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상행위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임에도 상인들이 괄시받았던 것은 조선시대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상인이 마지막 신분을 차지했겠는가? 중국 상인의 멋은 신분이 ‘말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덕목을 기본으로 하는 유상(儒商)의 품위를 지키려 했다는 점이다. ‘중국의 10대 상방’에서 성실함으로 손님을 대하고, 신의를 갖고 사물을 접하는 것을 상인이 갖고 있어야 하는 첫째 덕목으로 꼽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체성위기 대안 제시
온고지신이라 했던가?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풀어나가는 열쇠이다. 유사 이래 아라비아, 이탈리아 상인과 함께 세계 상권을 삼분했던 중국 상인들도 이제는 ‘사회주의하의 자본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실험을 겪으면서 정체성 위기에 빠져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중 하나로 과거 중국문화를 돌아보는 ‘인문정신’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 책은 상인이라는 특정 집단을 통해 ‘인문정신’을 구현해 보고자 하는 의도를 실현했다.
이제 중국은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할 중국의 저력을 믿는다면 그들의 정신 세계를 한번 정도 들여다 보는 지혜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중국상인, 그 4천년의 지혜' / 차오 티엔솅 지음/ 김장호 옮김/ 247쪽, 9000원▼
이종우(대우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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