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이 적용된다면 배상액수가 수십분의 1로 줄어들고, 그럴 경우 미국 변호사를 선임해 미국에서 비싼 소송을 진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법조계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구촌 시대에 국제분쟁이 늘어나면서 법의 영역에서도 이른바 ‘관할’이 무너짐에 따라 서로 이질적인 법의 적용문제를 놓고 분쟁과 논란이 빈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할법원 및 준거법▼
KAL기 괌 추락사고 피해자 유족 중 국내에서 대한항공과의 합의를 거부하고 미국 정부에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대략 150여명이다. 이들은 10여개 그룹으로 나뉘어 미국 뉴욕과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각지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이 서로 다른 지역 법원에 소송을 낸 이유는 사건을 맡은 미국 법률회사(로펌)의 소재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각 주의 법원에 따라 책임인정 여부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데 차이가 나 변호사들이 책임인정에 관대한 지역의 법원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처럼 같은 내용의 소송이 여러 지역에 산재해 제기되자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를 통일적으로 수행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소송위원회(MDLP·Multi―District Litigation Pannel)는 회의를 열어 KAL기 사고 소송의 관할법원과 준거법(적용법규)을 통일적으로 정하기로 하고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의 해리 헙판사를 지명했다.
헙판사는 이에 따라 관할법원을 괌 연방법원으로 정하고 적용법규는 한국법으로 하겠다는 임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준거법이 중요한 이유▼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미국법원에 소송을 내는 이유는 미국 법원의 배상판결 액수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법원은 사망사고가 아닌 평범한 교통사고 소송에서도 수백만∼수천만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린다. 이에 반해 국내 법원의 손해배상 액수는 사망 위자료의 경우 대략 5000만원 이내에서 정해진다. 치료비나 노동력 상실에 따른 일실(逸失)수입 등을 합해도 많아야 1억∼2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미국 법원이 자국에서 재판을 하면서도 미국법 대신 한국법을 적용하고 한국 판례를 따르겠다고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한국에서의 배상액수와 비슷한 규모로 판결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준거법 바뀔 가능성▼
헙판사 스스로 임시결정서(Minute Order)에서 밝혔듯 이번 결정은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은 아니다. 그러나 결정서 곳곳에서 한국법을 적용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한국법에 정통한 어빙 힐 판사를 선정해 괌 연방법원에 파견키로 한 것과 한국법 교본을 만들어 판사들이 참고하도록 하겠다는 것 등이다.
헙판사는 준거법에 관한 최종 결정은 28일 내리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유족(원고) 또는 그들의 변호사는 남은 기간에 이에 대한 반론과 반증을 치밀하게 준비해 헙판사의 판단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왜 한국법을 택했나▼
미국에서 최근들어 심각하게 제기된 문제 중에 ‘소송쇼핑’(Forum Shopping)이란 것이 있다. 배상액을 많이 받아내기 위해 각 지역의 법원으로 옮겨 다니며 소송을 내는 것이다.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서 ‘미국’ 또는 ‘미국 정부’에 조금이라도 걸치는 사건이 있으면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낸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사법부는 이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자국법 적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추세다.
헙판사의 결정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유족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소송 제기가 ‘소송쇼핑’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고 법조인들은 지적한다. 또 괌 추락사고에 대한 몇차례의 정밀조사에서 괌 관제탑의 과실이 부분적으로 인정된 만큼 관할과 준거법이 미국법이 돼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대한항공기 괌사고 피해자의 합의 및 소송진행상황 | |||
총 사고 피해자 수 | 합의 및 소송 제기 | 합의내용 | |
254명(사망 228명, 부상 26명) | 대한항공과 합의 100여명 | 1인당 2억5000만∼3억원 | |
미국 법원에 소송 제기 150여명 | 9명(합의) | 1인당 평균 330여만달러(총 3045만달러), 합의금 지급받음 | |
1명(합의진행중) | 상속 등의 문제로 합의금 미수령 | ||
10여명(합의 추정) | 합의내용 확인 안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