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살 때 부모를 따라 일본에 건너온 뒤 부모가 하던 김치가게 일을 도왔다. 평생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고생스럽더라도 도와주면 나중에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부모의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후일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스무살 무렵 부모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졸지에 처녀 가장이 됐다. 허전한 마음을 잊기 위해 미국 여행을 떠났다.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 다양한 외국식품이 팔리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인이 ‘고춧가루를 먹으면 바보된다’며 김치를 멸시하는 풍토가 한심했다. 김치라고 국제 음식이 되지 못하란 법이 있겠는가. 일본에 돌아와 곧바로 김치 생산공장을 세우고 백화점 슈퍼마켓 등에서 전시판매를 시작했다. 아무리 멀어도 한복차림으로 김치를 들고 달려갔다. 시식을 권하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많은 사람이 뿌리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늘 김치냄새 속에서 지내야 했던 2남1녀의 자녀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생인 큰 딸은 학생들이 아무 말도 없이 코를 틀어막는 장면을 일제히 연출해 통학을 하지 못할 지경에 놓였다. 강사장은 학교를 찾아가 따졌고 학부모회가 소집됐다. 학부모회에서 강사장은 차분히 김치에 관한 특강을 했고 이내 학부모들은 김치 애호가로 변했다.
김치의 인기는 ‘88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폭발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일본 젊은이의 80%가 김치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일본업체도 김치사업에 속속 뛰어들어 지난해 일본내 공장 김치 생산량은 25만t까지 늘었다. 이는 전체 절임 음식의 17%로 전통식품인 다쿠앙(노란무)등을 크게 웃돌았다. 제일물산에 김치제조 지도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대기업도 많다. 또 제일물산 브랜드를 사용하고 싶다는 제의도 많다.
제일물산은 대량 생산보다는 ‘맛’을 고집한다. 자동기계 대신 손으로 담그기 때문에 우에노와 지바(千葉) 공장에서 만드는 김치는 하루 2∼3t에 불과하다.
“일본의 겉절이식 김치도 물론 김치의 일종이지요. 하지만 자연발효식품의 맛을 제대로 살린 한국 김치를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김치는 국적없는 식품이 될지 모릅니다.”
청춘을 김치에 바쳐온 강사장은 요즘 ‘5평의 김치혁명’이란 책을 쓰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