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만해도 ‘총중류화’는 전후 일본의 사회가 성숙되었기 때문에 생긴 자랑거리라는 생각이 강했었다. 왜냐하면 전전(戰前)에는 부모의 계층에 따라 자식의 장래 진로도 거의 결정되어 있어서, 개인의 능력이 자유롭게 발휘될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후에는 ‘노력하면 무언가는 된다’는 것을 모토로 한 평등원칙이 어느 정도 사회에 침투되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일본 사회의 시스템은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붕괴되고 말았다고 한다. 일찍이 세계적 관심과 칭송을 한몸에 받았던, ‘넨고우죠레츠(年功序列)’로 대표되는 ‘일본식 경영’은 이제 그 빛을 잃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상류층은 시장원리와 자유경쟁, 즉 약육강식의 원리가 관철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노력’보다는 ‘실적’을 더 높이 평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와 같은 실적주의나 자유경쟁을 주창하는 엘리트층, 바로 그들이야말로 개인의 ‘실적’이 아니라 부모들의 계층 상속에 의해 현재의 지위에 올랐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는 지금의 일본이 전전보다도 더 계층이 고정화되어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력하면 무언가는 되는’ 사회에서 ‘노력해도 별 수가 없는’, 끝내는 ‘노력할 의욕도 안 생기는’ 사회로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진정으로 자기가 성취한 성과를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는 참된 의미의 실적주의가 일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재 상층부의 사람들이 자랑하고 있는 ‘실적’이란, 부모의 재산 학력 수입 등에 의해 처음부터 자본투하를 받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실적주의에는 ‘기회의 평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는데, ‘기회의 평등’이란 묘하게도 ‘나중에야 알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결과가 나온 다음이 아니면, 스타트 라인에서부터 ‘기회의 평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저자는 이러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세이프티 넷’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저자는 1963년에 태어난, 대단히 명석하고 야무진 사회학자이다. 저자의 정의감과 더불어, 어떤 기백조차 느껴지게 하는 학문적 동기와 정열이 이 책을 관통한다. 상층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으쓱거리고 큰소리만 치는 지식인들에게, 그의 이같은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 사회 일본' / 사토 토시키(佐藤俊樹) 지음/ 쥬코우(中公) 신서▼
이연숙(히토쓰바시대 교수·사회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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