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권력의 상징인 크렘린궁의 내밀한 ‘밥상 이야기’가 공개돼 화제다. 역대 러시아 지도자들의 식사습관과 술버릇, 크렘린궁의 연회에서 일어난 재미난 에피소드를 엮은 ‘러시아 지도자의 식탁 이야기’라는 책이 최근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저자인 상트페테르부르크 극예술아카데미의 파벨 로마노프 교수는 여러 문헌과 꼼꼼한 인터뷰를 통해 들은 증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절대 권력자들도 식탁 앞에서는 인간으로 돌아온 것일까. 이들이 식탁에서 보인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알고 나면 악명 높은 독재자도 왠지 친근하게 다가온다.
구소련의 악명높은 철권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선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인 그루지야의 최고 양조기술자를 다그쳐 법적으로 금지된 밀주를 담게 했다. 스탈린은 식탁에서도 측근들과 주로 정치적 화제를 즐겼다고 한다.
러시아를 방문한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마침 모스크바에서 생일을 맞자 레오니드 브레즈네프는 크렘린궁에서 파티를 열어주었다. 크렘린궁을 본뜬 대형케이크를 준비했으나 막상 키신저가 칼로 케이크를 잘라서 한입 먹자 소련 지도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적국의 국무장관이 크렘린을 집어삼켰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
유독 옥수수를 좋아해 미제국주의의 상징인 팝콘까지 즐겨먹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결국 옥수수 때문에 실각했다. 59년 미국방문 때 아이오와주의 광대한 옥수수밭에 감명을 받고 돌아온 흐루시초프는 육류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농토에 밀 대신 가축 사료용 옥수수를 심게 했다가 최악의 식량난을 불러 전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역대 크렘린궁의 주인들 중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현대통령과 함께 ‘예외적으로’ 술을 멀리 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술고래로, 보드카를 특히 잘 마시기로 유명한 보리스 옐친은 뜻밖에도 ‘맥주 체질’이었다고 한다. 시베리아 출신의 옐친이 가장 좋아한 음식은 부인 나이나가 쪄준 만두. 이 만두를 안주 삼아 그는 맥주를 들이켰던 것.
일벌레로 소문난 푸틴 대통령은 점심을 거르기 일쑤라고 한다. 그러나 첩보요원으로 해외근무 경험이 많아 낯선 음식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과 북한 방문에서도 중식과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고 이 책은 전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