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침몰 사고에 이어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자 러시아인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사회구조 때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각종 시설에 대한 유지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다 사회 기강이 해이해져 이같은 사고가 잇달아 생기고 있다는 것.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더욱 위기에 몰리게 됐다.
28일 하루종일 방송탑에서 내뿜는 검은 연기는 모스크바 하늘을 뒤덮었다. 민영 NTV, 관영 ORT, 국영 RTR 등 20여개 주요 방송사의 전파를 송출해온 방송탑이 화재로 파괴됨에 따라 대부분의 공중파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이 중단됐다. 적어도 2∼3일간 방송이 파행 운영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소방 관계자는 내다보고 있다.
이타르 타스 통신은 1967년 건설된 이후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지켜온 이 방송탑이 화재로 수직상태를 유지해온 철제 케이블의 50%가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방송탑이 약간 기울었지만 붕괴될 위험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소방당국은 “화재는 27일 오후 3시반 방송탑 460m 지점에서 누전으로 일어났으며 화재 직후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면서 두번째 화재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구조대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6명을 구출했으나 엘리베이터 여성 승무원과 소방관 등이 실종됐다.
전망대 식당(340m)에는 많은 관광객이 있었으나 다행히 불이 식당 위쪽에서 일어나 관광객들은 계단으로 대피해 대형 참사는 없었다.
화재 현장에는 240명의 소방대원과 35대의 소방 장비가 동원돼 진화에 나섰으며 세르게이 쇼이구 비상대책 장관, 블라디미르 루샤일로 내무장관,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 등이 진화 작업을 독려했다. 소방당국은 고열로 화재 현장에 접근하기 힘들자 일시에 산소를 차단하는 ‘특수 수류탄’을 사용해 진화했다.
러시아 언론부는 민간언론재벌인 미디어 모스트사(社)의 도움을 받아 우선 뉴스 프로그램 송출을 재개한 뒤 시내에 수천개의 간이 송수신시설을 설치, 방송을 복구할 계획이지만 방송의 원상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