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선생님의 저서 ‘시학을 위하여 II: 번역의 시학’은 번역을 시학 차원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번역이론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앙리 메쇼닉〓셰익스피어의 ‘소넷’, 단테의 ‘신곡’,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면서 받은 충격 때문입니다. 번역서에서는 원서에 있던 일종의 힘이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김〓아마 그 힘이 선생님 번역이론의 핵심인 듯한데, 그 힘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메쇼닉〓번역할 때 단어들의 의미를 내세우지 말고 그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작용의 연쇄(chain)를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그 연쇄는 모든 단어 속에 들어있는 자음과 모음의 음성적 조직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의미망’인데, 이 연쇄가 바로 하나의 언술을 형성하는 방식이자 힘입니다. 이 힘이 텍스트들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 내고 하나의 ‘언술 주체’가 들어 있는 텍스트가 되게 해줍니다.
▲제자인 김다은교수(왼쪽)가 파리 근교의 메쇼닉교수 자택에서 그와 인터뷰를 가졌다. |
김〓그 힘을 어떻게 번역해 낼 수 있습니까?
메쇼닉〓리듬을 번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리듬이라고 하는 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리듬, 즉 시에 존재하는 형태적인 리듬의 개념이 아니라 시건 산문이건 모든 언어활동 속에 들어있는 의미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한 작가가 글쓰기의 주체를 드러내기 위한 의미의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리듬을 인식하면 번역은 전혀 달라지고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즉, 쓰여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김〓선생님은 시인이자 번역 이론가이십니다. 사람들은 곧잘 시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기호학적 번역에서 탈피
메쇼닉〓기호의 이분법을 기반으로 하면 시/산문 대립이 일어나고 시의 번역이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즉, 의미/형태의 이분법에서 나타나는 불연속적 리듬을 번역해야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언급하는 새로운 리듬은 ‘의미―형태’의 일원론적인 연속성의 개념입니다.
김〓좀 더 알기 쉽게 문학 작품으로 그 예를 들어 주시겠습니까?
메쇼닉〓영국작가 드 퀸시의 ‘한 영국 아편쟁이의 고백’을 프랑스의 뮈세와 보들레르가 번역했는데 그 방식은 판이합니다. 뮈세는 드 퀸시의 사상을 먼저 파악한 후에 이를 불어로 그대로 옮겨놓는 ‘제 2의 작가’ 혹은 ‘열등한 작가’의 태도를 취했습니다. 원어에 충실하기 위해 단어 대 단어 식 번역을 했지만, 그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반역자’(‘번역은 반역이다’라는 의미의 ‘반역자’)가 됐습니다. 반면에 보들레르는 원작을 따르느냐 배반하느냐의 이분법적 태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창작 텍스트라는 맥락 안에 번역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번역의 충실성이나 가독성을 문제 삼지 않고 번역을 통해 자신의 이데올르기와 철학 그리고 불어 사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번역을 통해 더 이상 드 퀸시의 텍스트가 아니라 보들레르의 텍스트가 되게 만든 것이죠. 제 이론은 이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김〓그러면 번역이론과 창작이론을 동일선상에 놓으시는군요.
◇창작하는 자세로 임해야
메쇼닉〓언어활동이론과 문학이론과 시학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문학텍스트의 번역은 단어 대 단어의 기호학적 번역이거나 문장 대 문장의 언어학적 번역, 또는 국가 대 국가의 문화적 번역이어서는 안됩니다. 하나의 글쓰기 주체가 생성될 수 있는 리듬을 번역해야 합니다. 즉, 한 작가의 텍스트를 번역하면서 번역자는 자신의 텍스트를 창출하는 작가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상호텍스트적 번역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글쓰기의 주체를 거부하는 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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