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적군(赤軍)과 백군(白軍)사이에 내전이 벌어지자 극동러시아공화국의 수도였던 이곳에서도 많은 한인 사회주의자들이 ‘혁명을 위해’ 백군과 치열하게 싸웠다.
당시 전사한 한인 김유천을 기려 중심가 거리 이름이 ‘김유천 거리’가 되기도 했다. 알렉산드라 김이라는 여걸은 러시아인 남편 스탄케비치와 함께 레닌의 지시로 극동에 잠입해 공산주의운동을 지도하다가 백군의 포로가 돼 아무르강의 군함 위에서 총살됐다.
하바로프스크의 가장 큰 상가인 중앙시장을 찾았다. 한인동포 아다 김이 동생 나탈리아와 함께 중앙아시아식 김치를 팔고 있었다. 양배추와 당근 오이 등으로 만든 김치는 매운 맛이 없고 샐러드에 가까워 러시아사람들도 잘 먹는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온지 20년이 된 이 자매는 남편과 사별한 뒤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바로프스크시에만 4000여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주 전체에는 1만9000여명이 산다. 한인들은 출신지에 따라 달리 불린다. 그래서인지 전체 동포가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사할린 출신은 ‘화태치’로 불린다. 일제 때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려갔다가 해방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일제가 주로 영남지방에서 노무자를 징용했기 때문에 60% 정도가 남한 출신이며 아직 1세대가 많이 남아 있다.
이들은 조국은 물론 일본과 구 소련 정부로부터도 외면받아 상당수가 무국적자 신세다. 사할린 밖 이주가 금지되다가 20여년 전부터 본토로 옮기는 것이 허용됐다.
화태치는 러시아 정착 역사가 짧고 1세대는 러시아어에 능통하지 못해 주로 농업에 종사한다. 화태치들은 시내 북쪽에 모여 사는데 근교에서 야채를 가꿔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큰땅치’는 중앙아시아 출신을 일컫는다. 스탈린 시절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다시 극동으로 돌아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2, 3세로 러시아어도 유창하고 이름도 러시아식이다. 교육 수준이 높아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 등 한인 가운데 가장 번듯하게 살고 있다.
‘북선치’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다. 하바로프스크시 남쪽에 약 200여명이 모여 산다. 이들은 벌목장이나 광산 어장 등에서 일하러 왔다가 러시아에 눌러앉았다. 이들은 당연히 북한과 가깝다.
하바로프스크 인근의 벌목장 등에는 아직도 북한 노동자들이 많다. 취재팀은 시내 공사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을 발견하고 말을 걸려 했으나 안내인이 만류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무표정하게 취재팀을 쳐다볼 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바로프스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