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살릴까, 둘다 죽일까"…英 샴쌍둥이 분리 판결 논란

  • 입력 2000년 9월 23일 19시 08분


영화 ‘소피의 선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 소피는 2명의 자식 가운데 한명은 살릴 수 있다는 독일군의 ‘선처’를 받는다.

그녀는 결국 한 명을 택하게 되고 남은 평생을 고통과 자책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지난달 4일 영국에서 하복부가 붙은 채 태어난 뒤 ‘수술로 한 명이라도 살릴 것인가’ 아니면 ‘2명 모두 죽게 만들 것인가’를 놓고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샴쌍둥이에 대해 영국 항소법원이 22일 분리수술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맨체스터의 성(聖)메리병원에 있는 메리와 조디는 병원의 수술을 받게 됐으며 이들 가운데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조디는 목숨을 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분리수술에 반대해 온 아기들의 부모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경우 수술 시행은 다시 연기되기 때문에 샴쌍둥이 논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자인 쌍둥이의 부모는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은 ‘신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둘 다 죽는다 하더라도 그대로 자라게 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다.

반면 의료진은 “수술을 한다면 조디는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진은 “메리가 건강한 조디의 몸에 붙어 심장과 폐의 기능을 의지한 채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수개월내에 조디까지 숨질 것”이라고 진단한 상태.

판결을 내린 3명의 법관중 앨런 워드 판사는 “이번 결정은 생존의 가능성이 있는 한쪽 아기를 구하기 위한 고심의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와 일부 단체는 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비난했다.

의료윤리지(誌)의 편집인 라논 길론 교수는 “한 아기라도 구하는 것이 좋겠지만 모든 결정은 부모가 내려야 한다”면서 “어떤 다른 견해도 부모의 생각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화 속의 소피와는 달리 ‘신의 뜻’을 따르겠다는 샴쌍둥이 부모의 선택이 ‘인간의 법정’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주목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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