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리처드슨 에너지부장관은 이날 “미국의 난방유 재고가 지난해에 비해 19%가 줄었으며 특히 뉴잉글랜드 등 북동부 지역은 65%나 줄었다”고 밝히고 “미국인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선 SPR 방출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미 북동부 지역은 지난해 겨울 난방유 부족으로 많은 주민들이 혹한과 폭설 속에 고생해야 했던 곳으로 전체 가구의 3분의 1 정도가 기름 난방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난방유를 사용하는 미 가정의 에너지 비용이 한 달에 3∼5달러 정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기름 소비량은 하루 평균 1860만 배럴 수준. 따라서 하루에 100만 배럴씩 30일간 SPR를 방출키로 한 이번 결정만으로 유가가 지속적으로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뉴욕의 석유 거래업자인 톰 벤츠는 “SPR로 기대할 수 있는 유가 하락분은 배럴당 2달러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가가 단기적으로는 약간 떨어지겠지만 산유국들의 대량 증산 없이는 유가 불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석유 공급 물량 축소를 통해 국제유가 상승을 촉발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측이 이날 미국의 SPR 방출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미국이 SPR 방출이라는 비상수단을 발동한 것은 유가 상승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산유국에 상당한 증산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26일부터 2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리는 OPEC 정상회담과 석유 재무 외무장관 회담에서 석유 증산 문제에 어떤 전향적인 결정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증산 문제는 이번 회담의 의제는 아니나 미국의 SPR 방출로 상황이 바뀐 만큼 OPEC측의 입장 표명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공화당측은 이번 결정을 ‘클린턴의 고어 돕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미 민주당의 앨 고어 대통령 후보가 SPR 방출을 촉구한 지 하루만에 클린턴 대통령이 이를 수용한 것에 대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선거용 술책”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이에 리처드슨 에너지장관은 “SPR 방출은 정치적 동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미국인들을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공화당측은 그러나 “전쟁 등 진짜 비상시국에 사용해야 할 SPR를 선거철에 푸는 것은 잘못”이라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전략비축유?/비상사태 대비 5억배럴 지하 소금동굴에 저장▼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란 말 그대로 전쟁과 석유파동 등 비상사태를 대비해 미국 정부가 비축해 놓은 석유.
73년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이듬해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지시로 보통 미국 내에서 소비되는 한달 분량을 비축해 놓고 있다. 현재 SPR 물량은 5억7000만 배럴선.
이들 대부분은 루이지애나와 텍사스주에 면해 있는 멕시코만의 지하 소금동굴 속에 보관돼 있다. 소금이 바위처럼 굳은 이 곳은 오염되지 않아 오랫동안 석유를 보관할 수 있고 보관 비용도 저렴하기 때문.
SPR는 1991년 1월 걸프전 발발에 앞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 국제유가가 급등세를 보이자 단 한차례 방출된 적이 있다.
미 에너지부의 설명에 따르면 방출 물량 3000만 배럴은 유가가 안정된 뒤 현물로 상환하는 ‘교환’ 방식으로 정유업계에 할당된다. 1991년에는 정유회사에 현금을 받고 매각했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