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록카쇼무라 르포]核농축공장 이중장벽 설치 군사요새 방불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47분


도카이무라(東海村) 원자력 누출사고 등으로 일본 내에서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외국 기자로서는 극히 드물게 록카쇼무라 시설에 대한 취재기회를 가졌다. 한양대 김경민(金慶敏)교수와 일본 원자연료정책연구회의 미즈카미 도시마사(水上利正)주임연구원, 하가 지에미(芳賀千惠美)사무국장이 동행했다.

하가 국장은 “이 공사는 150t짜리 크레인 100대 이상이 동원된 일본 최대의 공사”라면서 “2005년 완공되면 국내에서 핵연료를 재생산, 준(準)국산 에너지를 확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부지는 225만평이며 총 투자액 3조3000억엔(약 33조원), 공사 참여업체만 1000여개사에 이른다.

일본이 1980년 이후 추진해온 핵연료 재활용 정책은 우라늄을 농축해 연료로 쓴 뒤 재처리를 통해 다시 핵연료로 활용하려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이 나오기 때문에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이 국제사회에서 매우 크다.

시설 건설과 관리를 맡은 일본 겐넨(原燃)의 홍보책임자 다키타 요시오(瀧田四子夫)과장의 안내로 차를 타고 시설 안에 들어섰다. 시설 둘레에 철책이 있고 안쪽에는 두꺼운 시멘트 장벽이 이중으로 설치돼 거대한 비밀 군사요새를 방불케 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핵농축공장이 나타났다.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우라늄 농도를 높이는 이 곳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받을 때를 빼고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다키타 과장은 “원심분리기의 크기나 수를 알면 곧 처리규모나 농도를 알게 돼 모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곳에서는 우라늄 성분이 0.7% 정도인 천연우라늄의 농도를 3∼5%까지 농축해 경수로 원자력발전소의 원료로 사용한다. 100% 우라늄을 만들어 핵무기 원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IAEA는 매년 25차례 사찰을 통해 우라늄 농축정도를 감시한다. 연간처리능력은 1050t이며 앞으로 1500t까지 늘려 일본 원전에 필요한 연료의 3분의 1을 공급한다.

핵농축공장 근처의 저준위 핵폐기물 저장소를 본 뒤 서남쪽으로 3, 4km 가량 떨어진 고준위 핵폐기물저장소에 들어갔다. 핵폐기물을 고체로 만들어 지하에 보관하기 때문에 출입 통제가 엄격했다. 외부인뿐만 아니라 사원도 드나들 때마다 방사선 노출정도를 검사한다. 저준위 저장소는 150년 분, 고준위 저장소는 수십년 분의 폐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크기다.

93년 착공된 핵연료 재처리공장 건설현장에 접어들었다. 부지 115만평, 투자비용 2조1400억엔(약 21조4000억원), 연 공사인력은 6800여명. 록카쇼무라 인구(1만2000명)의 절반이 넘는 엄청난 숫자이지만 워낙 공사면적이 넓어서인지 인부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전체 공정의 47% 가량 끝났으며 여기 저기 낮은 철 구조물이 들어서 있다.

공장 건설현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 폐연료 저장관리센터. 이곳에는 원전에서 한번 사용하고 남은 폐연료를 저장할 거대한 저장조 3기가 있으며 그 안에는 시험용 폐연료 32t이 저장돼 있다. 보통 3%짜리 우라늄은 원자로에서 1%만 사용되고 그중 1%는 핵분열 과정에서 변환해 플루토늄으로, 1%는 재사용 가능한 우라늄으로 남는다. 해상수송을 통해 이곳에 들어오는 폐연료는 물이 담긴 저장소에 보관했다가 재처리공장에서 초산에 용해시킨 뒤 성분별로 분리한다. 2005년 재처리공장이 완공되면 매년 800t의 사용연료를 처리, 플루토늄이 8.8t씩 만들어진다.

김경민 교수가 “바로 그 때문에 일본이 핵무기 제조 의혹을 받는 것 아니냐”고 묻자 다키타 과장은 “플루토늄을 일단 100%로 분리하지만 핵무기 제조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다시 우라늄과 50 대 50 비율로 섞어 보관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이 일본의 손에 달렸다는 말처럼 들렸다.

핵연료 재처리사업은 세계적으로 중단 추세에 있다. 미국과 벨기에가 70년대, 독일이 90년대 시설을 완전 폐쇄했다. 현재 가동중인 나라는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인도 뿐이며 그 중에서도 상업용 시설은 프랑스와 영국뿐이다. 일본도 지금까지 영국과 프랑스에 폐연료 재처리를 위탁하고 재생산된 플루토늄 25t을 현지에 맡겨왔다. 그런데도 일본이 의혹의 눈총을 무릅쓰고 아시아 평화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국내 생산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왜일까. 일본 주장대로 단순한 에너지 문제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현장을 둘러보는 5시간 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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