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 세계가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듯이 일본의 핵 정책도 이중성을 띠고 있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핵 폭탄 공격을 받았던 나라이기에 일본에서는 해마다 8월이면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염원하는 평화집회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현재 50여기의 원자력발전소를 갖고 있다. 미국 프랑스에 이은 세계 제3의 원자력 발전 대국인 것이다.
일본의 핵 정책의 이중성은 핵 폐기물 재처리에서도 보인다. 핵 폐기물 재처리는 핵폭탄의 원료로 쓸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어 국제적으로 핵폐기물 재처리 허가는 핵확산 방지 차원에서 엄격히 규제받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끈질긴 협상 끝에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 중 유일하게 핵 폐기물 재처리 허가를 얻었다. 일본의 유명한 군사전문가인 에바타 겐스케(江畑謙介)는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자금 기술 핵연료 그리고 지도자의 의지 등 4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은 경제대국이라 자금 걱정이 없으며 재처리 시설이 있으니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아오모리(靑森)현에 있는 원심분리장치는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어 원료도 문제없다. 문제는 지도자 의지인데 이 역시 언제 바뀔지 모른다. 한때 일본의 핵 전문가들은 핵폭탄 제조 능력에 대해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1994년 6월 일본 하타 쓰토무(羽田巧) 총리가 “일본은 핵 무장능력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국제 정치 환경이 바뀌면 일본은 언제든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
현재 일본은 핵무기가 없지만 핵 보유 능력은 다 갖추고 있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핵무기 제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선포해 준(準)NCND정책을 통한 과시 효과를 충분히 얻고자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김경민<한양대 국제 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