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에드먼드 모리스/신념의 대선공약 듣고 싶다

  • 입력 2000년 10월 3일 19시 05분


미국은 세계 각국과 함께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 들어섰다. 우리는 이 한 세기 동안 국제무대에서 또 다른 위대한 승리를 위해 전진할 것인지, 아니면 절름발이가 되어 점차 쇠퇴하고 말 것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곳곳에서 미국이 ‘위대한 강대국’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자탄의 소리가 들린다. 아직까지는 ‘초강대국’이라는 자부심이 팽배한 것도 사실이나 과거 ‘서방의 젊은 거인’이 점차 웅대한 자태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190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젊고 패기에 찬 목소리로 국가비전을 제시하며 국제무대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역설했다. 그는 때로 지나친 열정과 제스처로 온몸을 부르르 떨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연설은 ‘젊은 서방의 거인, 미국’에 대한 그의 열정을 믿어 의심치 않게 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인 지금은 어떤가. 용기와 비전이 제시되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정제된 회색빛 또는 소심한 언사만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어떤 대통령 후보자도 앞서 언급한 루스벨트 같은 활기찬, 그래서 국민에게 자신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연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후보는 외국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다시 외국 국가 이름을 답변해 내지 못하는 수모를 걱정해서인가. 앨 고어 민주당후보 역시 화를 자초할까봐서인지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 이후 미국 사회는 많이 변했고 성숙했다. 대외관계도 국내의 여러 통치 메커니즘과 복잡한 국가간 관계로 세련된 언행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젊은 국가’임에 틀림없다. 벌써부터 국제문제에 냉담하거나 무신경해서야 되겠는가.

역설적이게도 가장 나이가 많았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젊고 패기에 찬 연설을 유권자들에게 선사했다. 레이건은 남이야 어쨌든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고 젊은이처럼 연설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악마’라고 공격하고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감정이 억제된 단어 대신 보다 직선적인, 그래서 신념에 찬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젊은 사람들은 간결하고 직접적인 언사에 박수를 보낸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솔직한 태도를 좋아한다.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진정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간단 명료하게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때로는 루스벨트처럼 너무 공격적이거나 레이건처럼 무식한 발언을 해서 놀란다 해도 유권자들은 그런 후보에게서 감동을 받는다.

조지프 리버맨 민주당 부통령후보는 처음 레이건식 유머와 루스벨트 풍의 열정이 있는 후보자로 평가되었었다. 그러나 전당대회 등에서 행한 연설은 그에게 기대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딕 체니 공화당 부통령후보도 마찬가지다. 개성을 나타내주는 연설을 들려주지 못했다.

고어와 부시가 보좌관들이 적어준 정제된 언어만을 사용하는 판에 부통령후보인들 별다를 수가 있겠는가. 오프라 윈프리와의 대담이나 전당대회장 무대에서의 키스신도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권자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투표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후보자들은 아직 마음을 결정하지 않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개성 있고 신념에 찬 연설을 들려주기 바란다.

(http://www.nytimes.com/2000/10/01/opinion/01MORR.html)

에드먼드 모리스(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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