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TV토론]부시 '말 또박또박'…고어 '굳은 얼굴'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39분


이미지 변신의 총정리. TV토론 1라운드에 오른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후보는 약속이라도 한 듯 붉은 넥타이와 흰 와이셔츠, 그리고 감색 양복을 입었다는 점이 우선 눈길을 끈다. 두 후보의 연배가 비슷해 특별히 나이를 줄이거나 늘리기 위해 파란 드레스셔츠 같은 것을 입을 필요성을 둘 다 느끼지 않은 듯 하다. 의상과 분장으로 체감 나이를 조절하는 것은 역대 후보들이 TV토론에 임하는 전통적인 전략이었다.

부시 후보는 그 동안 선거 운동에서 노출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의식한 듯 이번 토론에서는 활기 있고 세련된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의 의도는 상당부분 성공적으로 관철된 것으로 평가된다.

질문한 청중 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며 절제된 팔의 제스처를 적절히 구사했고, 안정된 어깨를 유지하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답변에서도 날카로운 공격을 피해가며 전 국민을 배려하는 쪽으로 했으며, 말투도 미국인이 썩 좋아하지 않는 텍사스 억양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또박또박 알아듣기 쉽게 했다. 자신의 약점을 확실히 알고 대응한 전략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반면 고어 후보는 그 동안 들인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경직된 표정과 잦은 어깨의 움직임, 무대에서의 불필요한 이동 등으로 상대적으로 불안정해 보였다.

TV 토론이 있기까지 지루하고 재미없는 모범생 이미지를 벗기 위해 유세 현장에 군복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뉴햄프셔의 예비선거에서는 아예 정장을 벗어 던진 채 청바지 차림에 휴대전화까지 차고 유세를 하는가 하면 느리고 지루한 억양을 감추기 위해 록밴드 연주에 맞춰 연설 문장을 잘게 잘라 박수를 자주 유도했던 그간의 이미지 변신이 이번에는 퇴색된 느낌을 주었다.

무대 조명 또한 부시 후보 쪽이 밝아 부시 후보의 표정이 훨씬 밝아 보였다. 반면 고어 후보는 조금만 긴장을 해도 표정이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또 고어 후보의 의상은 체격에 비해 작고 넥타이 폭도 체격에 비해 너무 좁아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부시 후보에 비해 훨씬 비대해 보이는 역효과를 냈다.

TV 토론이 더 남아있지만 첫 번째 토론이 주는 인상이 상대적으로 강력하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일단 이번 토론에서 전달한 감성적 효과만으로 볼 때는 분명 부시 후보가 돋보였다. 그러나 다양한 미디어가 발달하고 있는 추세에서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도 점차 TV 토론이 주는 이미지 의존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TV 토론 직후 지지도 조사를 보면 감성적 이미지 면에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어 후보가 부시 후보를 앞서고 있는 점이 그 반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정숙<시그니아 미디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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