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등을 앞세우며 유고 전역에서 몰려온 시위대가 이날 오후 2시경 베오그라드 시청 앞 광장에 집결하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르비아” “세르비아”를 외치며 야당 대선후보인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의 애칭인 “보요”를 연호.
꿈틀거리던 거대한 군중의 물결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오후 4시경. 시위를 벌이던 청년들이 의사당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며 의사당 진입을 저지한 것. 한때 흩어졌던 군중은 이내 돌을 집어 던져 의사당 문과 창문을 부수었으며 경찰 차량에 방화했다. 곧 시위대에 압도된 경찰관들이 방패와 헬멧을 버리고 시위대에 가담했다.
오후 4시반경 의사당은 시위대에 의해 ‘점령’됐다. 의사당 안에 들어간 시위대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초상화와 집기 등을 건물 밖으로 내던졌다. 서류더미가 불태워지면서 의사당 안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의사당이 점거될 무렵 한 무리의 시위대는 국영 RTS 텔레비전 방송국을 점거하는데 성공했다. 시위대는 오랫동안 독재의 나팔수 노릇을 해온 RTS 방송국에 진입, 방송을 중단시켰다.
방송국을 지키던 경찰은 시위진압용 방패를 내려놓음으로써 시위대에 ‘항복’의사를 표시했으며 일부 경찰은 헬멧을 벗어던지고 시위대에 합류. 방송은 보얀 보실리시치 보도국장이 나타나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를 ‘유고연방 선출 대통령’이라고 언급하며 긴급 인터뷰를 하는 것을 시작으로 ‘혁명 방송’으로 재탄생했다.
RTS가 시위대에 점거될 무렵 그동안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지지해온 폴리티카 TV 방송도 “폴리티카는 이제 국민의 것”이라고 선언.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해왔던 관영 탄유그 통신도 이날 오후 9시20분경 코스투니차 후보의 군중연설을 보도하면서 그를 ‘유고슬라비아의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소개.
대선 개표 과정에서 여론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내놓아 분노를 샀던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을 점거한 시위대는 밀로셰비치를 찍은 투표용지가 가득 찬 자루를 발견.
○…야당 대통령 후보로 이번 시위를 주도했던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후보는 5일 밤 시위대가 의사당과 방송국, 주요 관공서를 점거한 뒤 도심에 운집한 군중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오늘 세르비아는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지배로부터 해방됐다. 세르비아에 민주주의가 찾아왔다”고 선언.
밤이 깊어지면서 베오그라드 시내는 축제 분위기로 변했으며 군중은 도심을 떠나지 않고 “독재는 끝났다”를 외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밤을 새웠다. 5일 날이 밝자마자 수십만의 군중은 다시 베오그라드 도심에 모여들어 ‘민중의 승리’를 축하하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밀로셰비치측의 반격에 대비하는 모습. 시위대에 밀려 철수했던 경찰도 6일 오전 업무에 복귀, 범죄예방과 질서유지에 만전을 기하는 등 베오그라드 시내는 급속도로 평온을 되찾았다.
〈박제균기자·외신종합연합〉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