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이스라엘의 공격과 팔레스타인측의 대응자세를 보면 양측은 사실상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들어갔다. 이스라엘은 이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령부와 사무실, 경찰학교 등 팔레스타인 지휘부 등을 공격했다. 당시 아라파트 수반은 사무실에 있지 않았지만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라파트는 "병원에 가서 동예루살렘까지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할 것" 이라고 경고했다. 또 이스라엘이 제한적 공격이라고 주장한데 대해 팔레스타인측은 "탱크와 로켓포, 무장헬기를 동원해 무차별 폭격한 게 전쟁이 아니면 뭐냐 "고 반문했다.
형제 들이 당하는 모습에 격분한 아랍권은 팔레스타인 전사들에게 무기를 공급하고 노골적으로 지하드(聖戰) 를 외치는 등 심상찮은 분위기다.
이라크 정부는 "팔레스타인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을 치르겠다" 며 "자원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고 밝혔다. 앞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0일 팔레스타인 성전을 지원하겠다면서 군동원령을 내린 바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고 부추기고 있다. 아랍의 맹주를 자처하는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 '형제들에 대한 폭력의 전면중단' 을 요구했다. 이란까지 반이스라엘 대열에 나서고 있다.
아랍권 지도자들의 이같이 격앙된 반응이 행동으로 이어질 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순한 분노의 표시라는 구두탄에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앙돼 있는 아랍인들의 감정은 이미 비등점을 넘은 것 같다. 아랍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사이트인 arabia.com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지지했다. 또 카이로 암만 다마스쿠스 등 도시에서는 연일 반 이스라엘 시위가 계속되면서 팔레스타인에 무기를 공급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행동에 들어간 나라도 있다.12일 미 구축함이 공격받은 예멘에서는 지난주 자국을 팔레스타인에 무기를 공급하는 루트로 사용해도 좋다고 밝힌 바 있다. 오만은 자국주재 이스라엘 무역대표부를 폐쇄하고 텔아비브 주재 무역대표에게도 소환령을 내렸다.
21∼22일 열리는 아랍정상회담은 아랍권의 힘을 과시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압델 메귀드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아랍이 이스라엘의 그런 습관에 팔짱을 끼고만 앉아있지는 않을 것 이며 모든 대안들이 열려 있다" 고 경고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경고 이상의 실력행사가 결정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아랍권 전체의 대 이스라엘 선전포고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일부 국가나 단체들의 자살테러 등 돌발적인 무력행사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는 자칫 중동전역을 순식간에 전쟁국면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특히 5차 중동전의 도화선격인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평화협상에 지친데다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증오는 극에 달한 상태. 또 팔레스타인 지도부도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하마스 와 지하드 소속의 골수 전사 350명을 풀어줬다. 아라파트 수반은 이들이 평화협상에 걸림돌이 된다해서 감옥에 붙잡아 놓은 강경파들로 대 이스라엘 테러의 선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레바논 이집트 등지에 즐비한 무장단체와 이슬람교도와 손잡고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지하드에 나서면 자칫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발단이 될 수도 있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지구촌의 눈길은 온통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