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목포에서 뱃길로 2시간반 남짓 거리인 서남해 외딴섬인 하의도(전남 신안군 하의면).
김대중대통령의 고향인 이곳은 13일 오후 김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호로 뒤덮였다.
막바지 가을걷이를 잠시 접어둔 채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섬마을 주민들은 “우리 대통령께서 드디어 해냈다”며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 민주주의와 인권에 헌신하신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자랑스러운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주민들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이런 플래카드를 동네 곳곳에 내걸고 100년째 노벨평화상을 자축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집안에 있던 징 꽹과리 장구 등을 챙겨 들고 김대통령의 생가인 후광마을로 찾아들었다. 농악대의 가락에 맞춰 어깨춤을 추기 시작한 주민들은 김대통령의 큰 형수 박공심(朴公心·77)씨의 손을 잡고 기쁨을 나눴다.
박씨는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솔직히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보다 더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주민들은 “14번이나 후보에 오른 김대통령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올해는 꼭 수상할 줄 알았다”며 “위(청와대)에서 노벨상을 타더라도 잔치를 하지 말도록 당부했지만 국가적인 경사를 두고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느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흥겨운 춤판이 끝날 때쯤 주민들은 음식상 앞에 모여 앉아 막걸리잔을 돌리며 김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민주화 투쟁과정 등을 화제 삼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리마을 이장 김종기(金琮琪·60)씨는 “민주주의와 조국통일을 위해 살아온 김대통령의 인생역정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며 “이번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열려 영원한 ‘통일 대통령’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시내에는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자 거리 곳곳에 축하 플래카드가 내걸리고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등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김대통령의 모교인 목포상고에서도 100여명의 학생들이 남아 TV를 보며 수상의 기쁨을 나눴다. 이 학교 유무정(劉武正·58)교장은 “80년 역사의 학교와 2만3000여명 동문들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하의도〓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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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가 된 13일 오후 국민은 국가적 경사라며 환영했다. 국민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가 정착되기를 기대했다.
영화감독 강제규(姜帝圭)씨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부문에서 한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인식시키게 됐다는 점에서 기쁘다”고 말했다. 서정대(徐正大)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은 “김대통령이 개인적 영광에 안주하지 말고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우리 민족의 탁월한 지도자로 회향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국민은 특히 이번 수상이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국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벤처기업 ㈜한국비즈텍에서 동료들과 함께 이 소식을 접한 회사원 이기상(李奇相·33)씨는 “노벨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가 더욱 빛이 나려면 무엇보다 현재 ‘제2의 IMF’라 할 만큼 어려워지고 있는 나라 경제를 힘껏 돌보고 일으켜 세우는 게 급선무”라고 주문했다.
김재정(金在正)대한의사협회장은 의권쟁취투쟁위원회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던 중 TV로 수상소식을 듣고 “김대통령이 의약분업 준비가 미흡했음을 인정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의약분업 등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재율(朴在律)부산 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최근 들어 국가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단비가 내린 듯한 소식”이라면서 “모든 국민으로부터 환영받을 수 있도록 김대통령이 국내 문제 해결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가정주부 이가희(李佳喜·38·대전 유선구 전민동)씨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의약분업 등 국내 현안도 속시원하게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주환(金周煥)서울 장위중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부정적이었던 정치인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교육적으로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문학 과학 등 다른 분야에서도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차병직(車炳直)변호사는 “특히 대북정책에 대한 국내 보수세력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밀어붙인 데 대한 적절한 포상이라고 본다”며 “김대통령이 이를 계기로 국민 목소리를 경청해 국내경제 등 당면문제를 해결하는 데 신경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영아·권재현·조용휘기자>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