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북한땅 금강산에서 만난 벽안의 비구니 관도(觀道)스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속명이 캐서린 에스티(32)인 그녀는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패션학교 FIT를 졸업한 전직 무대의상 디자이너. 회색의 장삼을 걸친 모습으로 산을 오르느라 흘린 민머리의 땀을 훔칠 때면 혹시 비구니로 변장한 뉴욕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98년 29세에 ‘참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찾은 남아공 케이프타운 인근의 법광(法光)선원에서 숭산(崇山)스님의 유발상좌(머리를 깎지 않은 제자) 헤일라 다우니를 만난 것이 인연이었다.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생각하기 전에 느낌이 왔어요.”
다우니를 만난 지 3개월만에 숭산스님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고자 케이프타운을 떠나 서울 수유리 화계사 국제선원을 찾았다. 선원장인 미국인 무심(無心·42·브라운대 졸업)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남자들도 머리 깎을 때는 고민하는데 그녀의 출가 결정은 무척 빨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해도 선(禪)이 수행방법인 줄로만 알았지 종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2년 가까운 고된 행자생활을 끝내고 올 2월 ‘비구니는 비구니로부터 계를 받는다’는 전통에 따라 홍콩에 거주하는 향음(香音)스님을 은사로 관도라는 법명을 얻고 스님이 됐다. 이제는 선이 불교의 깊은 종교적 전통에 속한 것임을 알게 됐고 그 전통과 연결된 것에 기쁨을 느낀다.
현재 국제선원에서 수행 중인 유일한 비구니인 그녀는 숭산스님을 따라 대봉(大峯) 무심 무량(無量) 등 외국인 스님과 함께 불교신문사 주최로 열린 금강산 순례에 나섰다. 북한 통행검사소 직원들은 머리를 깎은 이 서양여인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불교에서 어떤 근무를 하고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금강산〓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