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디부아르 '피플파워' 승리…군정지도자 탈출

  • 입력 2000년 10월 25일 18시 37분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 ‘피플 파워’가 철권통치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주권자의 선택을 뒤집으려는 군부에 시민들은 맨몸으로 맞섰다. 보안군이 시위대에 무차별 총격을 퍼부어 유혈참극까지 빚은 끝에 결국 군정지도자는 국외로 탈출했다.

▽국외탈출〓지난해 12월 쿠데타로 집권한 로베르 구에이 장군이 22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하자 ‘민의 저항’이 들불처럼 타올라 내전으로 비화됐다.

구에이 장군은 행정수도 아비장에서 보안군과 야당에 동참한 군부세력이 충돌한 지 하루만인 25일 헬리콥터를 타고 인근 베냉의 행정수도 코토누의 한 군사기지로 가족과 함께 탈출했다.

구에이 장군측은 군정 각료들과 상당수의 군부세력이 자신의 지지를 철회하자 전격적인 국외탈출을 감행했다.

코트디부아르의 식민지배국이었던 프랑스의 샤를 조슬랭 협력장관은 “구에이 장군이 아비장의 대통령궁을 떠났으며 그는 더 이상 대통령의 위치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항의시위〓이날 아비장과 부아케 등 주요 도시에서는 구에이 장군의 대통령 당선 발표(24일)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정부측 보안군과 반(反) 구에이파 군대가 충돌했다.

아비장에서는 전날에 이어 수만명의 군중과 헌병대가 시위에 참가했으며 반 구에이파 군대가 국영 TV와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했다.

이와 관련, 앙리 사마 정보장관은 “야당인 인민전선(FDI)의 당수 로랑 그바그보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한다”고 발표한 뒤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바그보 당수는 아비장에서 지지군중을 향해 “우리는 선거쿠데타를 일으켰다”면서 “나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발단〓이번 사태는 24일 군부가 구에이 장군의 일방적인 승리를 선언한 뒤 투표결과를 집계중인 선거관리위원회를 해산하면서 발생했다. 이에 항의하는 군중 수천명이 아비장에서 ‘구에이 하야’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이자 군부는 국가비상사태와 통행금지를 선포했고 보안군은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 사망자가 속출했다. BBC방송은 “수천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으며 보안군이 쏜 총에 9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앞서 코트디부아르 내무부는 24일 구에이 장군이 이번 대선에서 52.7%의 지지를 얻어 41.2%에 그친 그바그보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백경학·이종훈기자>stern100@donga.com

▼'시민혁명' 주역 그바그보…30년 독재 맞서 싸운 민주화 투사▼

로베르 구에이 장군이 25일 아비장의 대통령궁에서 국외로 탈출한 뒤 대통령 선거 승리를 선언한 야당 아이보리인민전선(FPI)의 로랑 그바그보 당수는 30여년 동안의 1당독재에 맞서 야당세력을 이끌어온 민주화 투사이다.

그는 1971년 대학강사로 재직중 ‘반체제 강의’를 했다는 혐의로 투옥된 바 있고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82년에는 당시 정권의 억압을 받자 파리로 망명했다.

88년 펠릭스 우푸에 보이니 대통령이 다당제 선거를 허용하자 귀국한 뒤 FPI를 만들어 선거에서 도전한 첫번째 야당지도자가 됐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와 베디 대통령의 집권당 내 후계자로 알려진 에밀 콩스탕 봉베가 함께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대법원이 이들이 외국 혈통이라는 점을 들어 출마를 불허함으로써 로베르 구에이 장군에 맞선 후보 중 가장 강력한 야당 후보가 됐다. 그바그보 당수는 ‘선거쿠데타’와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결국 군정을 무너뜨렸으며 이변이 없는 한 차기 대통령직에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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