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신대륙 발견이 고전의 권위 깼다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47분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그래프턴 지음/ 서성철 옮김/ 일빛/ 328쪽/ 1만5000원

“세계의 변두리에는 개의 머리를 가진 사람, 머리가 어깨 밑에 달린 사람 등등이 산다.” 플리니우스의 ‘대박물지’에 실린 내용이다. “이집트에서는 여자들이 서서 소변을 보고 남자는 그 반대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 쓰여있는 얘기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학자들이 한정된 경험과 지식을 쌓아 만든 고전 문헌들. 이 텍스트들이 15세기까지 유럽인들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그러나 상황은 일변했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리스인이 가지고 있던 지식은 편협하고 빈약하며, 그들의 과거에 대한 지식은 우화나 소문에 지나지 않고, 지리학이나 민족지(民族誌)에 관한 얘기들도 피상적이다”라고 일갈했다.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저자는 신대륙 발견 이후 새로운 세계에서 유럽으로 넘쳐 흘러오기 시작한 뉴스들, 세계에 대한 ‘사실’들이 고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고 분석한다. 항해사들은 먼 곳에도 괴물인간이 살지 않는다는 점을 증언했으며, 국가공동체가 생기기 이전의 사회모습을 인디오들의 삶이 설명해주었고, 생물과 광물에 대한 새로운 지식까지 항구로부터 흘러넘치기 시작했기 때문. ‘신대륙이 고대의 정전(正典)을 대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지적 풍토를 수립하는데 고전 텍스트가 배척만 받은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고대의 텍스트가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는 장애물이 됐지만 최초에는 새로 발견한 사실들을 표현하기 위한 지침서가 됐다”고 말한다. 16세기 새로운 지식의 대변자 중 하나인 마티르는 “다른 문화에 대한 닫힌 태도, 인식의 편협성을 극복하는 것을 헤로도투스에게 배웠다”고 고백했다. 메르카토르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을 ‘낡아빠진 것’으로 폄하했으나 그의 지도 투영법에서 도움을 받아 ‘메르카토르 도법(圖法)’을 완성했다.

책은 “서구에서 고전은 학문을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오랜 세월에 걸쳐 수행했다. 어떤 것은 원시적이지만 어떤 것은 정교하다. 지리상 발견에 이어 16세기에 많은 것이 깨어지고 대체됐지만 번득이는 호소력을 지닌 몇몇은 오늘날까지도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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