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떨어진 美사법부…아전인수격 판결 잇달아

  • 입력 2000년 12월 10일 18시 30분


미국 법치주의의 보루인 사법부가 심각한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 개표과정에서의 법리공방으로 인해 연방 대법원과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두 최고법원 내부에서도 팽팽하게 맞선 견해차로 내홍(內訌)을 겪고 있는 것.

9일 플로리다주의 수작업 재검표를 중단하도록 명령한 연방 대법원의 판결은 대법관 9명중 5 대 4의 결정으로 이뤄졌다.

보수적인 성향의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과 안토닌 스칼리아, 클래런스 토머스, 앤서니 케네디,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은 다수의견 쪽인 반면 진보적인 존 폴 스티븐스, 스티븐 브레이어,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데이비드 수터 판사는 소수의견을 냈다.

소수파인 존 폴 스티븐스 판사는 의견서에서 “다수파는 주 법원이 주법에 따라 내린 판결을 존중해 온 전통을 저버렸다”면서 “(다수파 대법관들은)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에 다수파의 스칼리아 대법관은 성명을 내고 “합법성에 논란이 있는 표들을 재검표하는 것은 원고(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힐 수 있다”고 반박했다.

8일 플로리다주의 무효표를 재검표하라는 판결을 내린 플로리다주 대법원도 대법관 7명의 의견이 4 대 3으로 갈렸다.

해리 리 앤스테드, 프레드 루이스, 바버라 패리엔트, 페기 퀸스 대법관은 “시간이 촉박하더라도 모든 합법적 표들을 최종 개표결과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찰스 웰스 대법원장과 메이저 하딩, 리앤더 쇼 주니어 대법관은 이에 반대했다. 웰스 대법원장은 “사법 절차를 길게 끄는 것은 이 나라와 플로리다 주를 전례 없고 불필요한 헌정 위기로 몰아갈 것”이라며 언짢아했다. 앞서 연방 대법원은 4일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수작업 재검표 문제를 만장일치로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당시 대법관들은 판결문에 서명은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이견은 있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일치된 모습을 보이려는 대외용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연방대법관 9명 중 7명은 공화당 정권에서 임명됐다. 플로리다주 대법관은 7명 중 6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따라서 최근 2차례 연속 연방 대법원은 부시 후보 쪽의 손을, 플로리다주 대법원은 고어 후보 쪽의 손을 들어준 것도 이 같은 당파성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어쨌든 사법국가인 미국에서 빚어진 사법부 내부의 분열상과 그에 따른 권위 실추로 인해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더라도 패자측이 승복 하지 않는 한 정쟁이 한동안 계속될 조짐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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