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을 포함한 9명의 대법관은 심리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식한 듯 공화 민주당측 변호사들의 변론을 수동적으로 듣는 대신 초반부터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질문 공세를 펼쳤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는 심리가 끝난 뒤 자기편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을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어 후보는 관저에서 연방대법원 심리에 관한 TV방송을 면밀히 시청한 뒤 현장에서 심리를 지켜본 윌리엄 데일리 선거본부장 워런 크리스토퍼 전국무장관 등과 향후 대책을 숙의했다.
고어 후보측은 이날 “보이스 변호사가 수작업 재검표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변론했다”며 판결에 대해 낙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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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후보도 “심리가 끝난 뒤 변호인들과 통화한 결과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며 “마음이 평온한 상태”라고 밝혔다. 평소 대선을 둘러싼 법정소송에 관한 보도를 좋아하지 않는 그는 이날도 연방 대법원 심리에 관한 보도를 시청하지는 않았다.
부시 후보 진영은 “연방 대법관들이 던진 질문에 비춰볼 때 플로리다주의 수작업 재검표를 잠정 중단시킨 결정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사법부가 부시 후보의 손을 들어 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날 심리의 최대 쟁점은 연방대법원이 주의 권한에 속하는 선거문제에 관여하는 것이 타당한 지 여부와 플로리다주에서 과연 합리적인 재검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공화당의 시어도어 올슨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하자마자 “연방차원에서 문제가 되는 게 무엇이냐”고 따졌고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은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주법에 따라 내린 수작업 재검표 판결을 연방대법원 보고 번복해달라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추궁했다.
이에 올슨 변호사는 “플로리다주의 선거결과는 미국 대선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다 플로리다주 대법원의 판결이 연방헌법의 평등 및 적절한 절차에 관한 조항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변론에 나선 민주당의 데이비드 보이스 변호사는 “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재검표 판결을 내린 것은 선거법의 모호한 규정을 정당하게 해석한 데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연방대법원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맞섰다.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과 스티븐 브레이어 대법관은 수작업 재검표에 통일된 기준이 없다는 올슨 변호사의 주장에 그렇다면 공화당이 생각하는 공정한 재검표 기준은 무엇이며 또 연방대법원이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통일된 기준을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에 대한 견해는 어떤지를 물었다.
이날 심리에선 연방대법원이 9일 플로리다주의 무효표에 대한 재검표를 5 대 4의 판결로 중단시켰기 때문에 다수 의견 쪽에 섰던 이들이 소수의견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평소 연방대법원이 보수와 진보로 나뉠 때 중간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온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과 케네디 대법관의 발언이 특히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입장에 동조하는 듯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코너 대법관은 “연방 대법원이 1일 1차 심리 때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수작업 재검표를 인정한 근거를 밝힐 것을 지시했으나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며 “이는 문제가 된다”고 말해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불만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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