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선택2000]미대선 후유증 '몸살'…국정차질 우려

  • 입력 2000년 12월 12일 18시 42분


한 달 이상을 지루하게 끌어온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개표 혼란은 미국에 깊고 큰 상처를 남겼다. 분열된 국론과 추락한 사법기관의 권위, 심화된 당파적 이기주의로 점철된 대선 후유증 때문에 미국은 당분간 심한 홍역을 앓을 전망이다.

▽갈라진 국론〓최고 사법기관인 연방 대법원이 9일 플로리다주 수작업 재검표를 전격 중단시킨 뒤 대선 혼란이 ‘정치 내란’으로 비화될 수준까지 이르렀다.

주요 국사에서 전원일치의 판결로 국론을 모아온 연방 대법원은 플로리다주 선거 논란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뚜렷한 정치적 색깔로 양분되는가 하면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비난전’까지 벌였다.

연방 대법원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자 진보계층은 최고 사법기관의 공정성과 권위 추락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공화당원과 보수계층은 선거 직후부터 거의 일방적으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편을 들어온 민주당 성향의 플로리다주 대법원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여론도 극명하게 갈렸다. 주 대법원과 연방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나올 때마다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CNN방송과 USA투데이지, 갤럽이 10일 조사한 결과 수작업 재검표에 대해 찬성이 47%, 반대가 49%로 나타났다. 게다가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확정이 늦어지면서 공화당이 지배하는 플로리다 주정부와 주의회까지 개입해 당파 싸움의 대결구도까지 만들어졌다.

▽정권인수 차질〓지금쯤 새 내각 구성을 마무리짓고 취임 첫해 국정운영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할 차기 대통령 당선자의 정권인수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내년 1월20일까지의 정권인수 작업 기간(10주)중 이미 절반이 지나버렸다. 두 후보는 그동안 정권인수팀을 가동해왔지만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지는 못했다. 가장 시급한 연방 행정부내 3000여개의 요직 인선 작업도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다.

정상적이라면 새 대통령은 지금쯤 첫 의회연설에서 발표할 정책을 거의 마무리해야 한다. 특히 부시 후보의 경우 백지에서 출발하는 입장이라 부담이 더욱 크다. 부시 후보의 러닝메이트 딕 체니가 이끄는 정권인수팀은 1만7000여장의 이력서를 검토중이지만 대통령 비서실장과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 국무장관을 뺀 나머지 각료들의 윤곽은 아직 안개 속에 싸여 있다. 전문가들은 “정권인수 작업이 너무 지연돼 차기 행정부가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착륙 논란에 휩싸여 있는 재계와 증권시장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기의 해프닝 전말〓법원이 차기 대통령 결정의 최종 권한을 행사한 이번 사태는 선거 당일(11월7일) 미 언론이 플로리다주(선거인단 25명)에서 고어 후보의 승리를 예견했다가 이를 번복하면서 시작됐다. 언론은 다음날 부시 후보가 전체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수인 271명을 얻어 당선됐다고 보도했다가 또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다.

정작 개표 결과 부시 후보와 고어 후보간의 득표 차가 1784표에 불과해 자동 재검표에 들어갔고 해외부재자표 결과를 합치자 득표 차가 930표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팜비치 카운티 투표용지의 도안문제와 각종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법정 싸움’에 시동을 걸었다.

잇단 혼미와 반전 끝에 플로리다주가 인증한 최종 개표 결과에서 부시 후보는 고어 후보에게 537표를 이겼으나 법정 공방을 잠재우지 못했고 급기야 연방대법원이 개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주 대법원은 논란표의 수작업 재검표를 명령, 사실상 연방 대법원의 재심 판결을 거역하면서 고어 후보 쪽에 서 다시 연방 대법원이 개입하는 거국적 법정 대결이 벌어졌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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