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등 피해국 언론매체가 법정관련 기사를 연일 비중 있게 취급한 것과는 달리 일본 언론매체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8일부터 닷새 동안 계속된 법정에는 날마다 일본 취재진 100여명이 몰려 뜨거운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아사히신문을 제외한 요미우리 마이니치 산케이 등 주요언론들은 보도하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조차 이 법정관련 기사를 두 차례나 대형박스로 보도하면서 히로히토 천황 등의 기소사실이나 일본정부의 전쟁책임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대신 과테말라 등 분쟁지역의 성폭력을 비중 있게 다뤘다. 법정 마지막 날인 12일 히로히토 천황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데 대해서도 제2 사회면에 ‘쇼와(昭和·히로히토시대의 연호)천황에게도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간단히 보도했다.
법정이 열리고 있던 9일 일본의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이날 생일을 맞은 마사코(雅子)황태자비의 기자회견 기사를 사진과 함께 크게 실었다. 또 황후가 8일 오후 전국공립초중학교 여성교장회 결성 50주년 기념식에 출석했다는 기사도 곁들이는 등 연일 천황 일가의 동정을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성국제전범법정 주최단체 중 하나인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본네트워크’의 쇼지 루쓰코(東海林路得)사무국장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국제법정을 보도하지 않은 일본 언론매체는 언론의 의무와 사명을 포기했다”며 비판했다. 천황 문제에 대한 보도가 많지 않은 것은 극우세력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일부 작용했다.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미강 총무도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일본사회의 우익화 경향이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일본이 전쟁책임을 외면하는 한 과거와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이번 법정이 열린 기간 내내 행사장에서는 일본 극우세력의 선전차량이 주변을 돌며 “위안부는 강제연행이 아니었다”며 가두방송을 했다. 또 마지막 날에는 극우단체가 대거 출동해 “미국 등 백인들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등 더 나쁜 짓을 많이 했다” “일본은 돈이 없다. 배상이란 있을 수 없다”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탄압부터 중지하라”는 등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