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 외교 갈등…푸틴, 정상회담 일방 연기

  • 입력 2001년 1월 19일 18시 28분


일본이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러시아는 2월 25, 26일로 예정된 푸틴 대통령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의 정상회담을 연기하겠다고 18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연기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일본은 당연히 큰 충격을 받았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런 모욕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며 강경대처를 촉구했다.

일본이 반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상회담 일정은 러시아를 방문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외상과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상이 16일 합의한 것이다. 외상간에 합의된 내용을 이틀 만에 번복한 것은 외교관례상 이례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연기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비난을 무릅쓰고 회담을 연기한 것은 북방 4개 섬의 반환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예봉을 꺾으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일본은 정상회담에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까지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북방 4개 섬 반환과 평화회담 체결문제를 물고늘어질 예정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섬을 호락호락 내줄 의사가 없다. 러시아 외무성의 한 간부는 “북방 4개 섬은 러시아의 영토이며 그 사실은 헌법에도 명기되어 있다”며 ‘영토 문제’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러시아측의 정상회담 연기는 따라서 일본에 ‘기대할 것이 없을 것’을 알리는 통고나 마찬가지다.

모리 총리는 “원래 일정이라는 것은 조정해가며 결정하는 것”이라며 애써 불쾌감을 숨기고 있다. 하지만 북방영토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함으로써 정권기반을 강화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은 틀림없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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