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뉴욕타임스]케빈 코스트너가 고른 감명깊었던 영화

  • 입력 2001년 1월 25일 18시 27분


케빈 코스트너는 시사실 뒤쪽의 소파에 불편한 기색으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그가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본 영화 중에서 특히 감명 깊었던 작품 하나를 골라 기자와 같이 보면서 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온 참이었다.

그가 고른 영화는 폴 뉴먼 주연의 1967년작 <냉정한 루크(Cool Hand Luke)>. 그는 이 영화를 수십번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폴 뉴먼의 연기에 홀린 듯 스크린을 들여다보았다.

이 영화는 사슬에 묶여 노동을 해야 하는 죄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둡고 조용한 거리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뉴먼이 주차장의 미터기를 부수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돼 죄수가 되는 것으로 첫 장면이 시작된다.

영화는 서두르지 않고 폴 뉴먼이 미터기를 부수는 모습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금속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잠깐의 침묵. 몇 번의 발자국 소리. 다시 금속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

코스트너는 만약 이 영화가 요즘 만들어졌다면 첫 장면이 간략하게 몽타주처럼 처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영화 속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영화사 중역들은 제작 중인 영화를 보면서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아, 그래,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어. 그러니까 같은 장면을 자꾸 반복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자고.’ 하지만 위대한 영화란 바로 중요한 순간들을 서둘러 처리하지 않는 작품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가지, 급한 마음으로 극장에 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영화 제작자들은 관객들이 지루해 하기 전에 행동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코스트너는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할리우드의 주연급 배우로 활동해왔으나 자신에게도 무명의 단역배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는 <냉정한 루크>가 재미있는 이유 중의 하나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단역배우들이 어떻게든 관객의 눈에 띄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꼽는다. 사실 이 단역배우들이 지금은 대부분 유명한 스타가 돼있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이 영화에서 데니스 호퍼의 모습을 잘 지켜보세요. 그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해요.”

호퍼는 이 영화에서 몇 번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도 항상 여러 죄수들 중 한 명으로 나올 뿐이다. 대사도 한 마디 없다. 그런데도 그는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생생한 인상을 심어준다. 예를 들어, 한 장면에서 호퍼는 물통을 들고 벽장으로 가서 넣어두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벽장의 문을 닫은 다음 그는 아무 이유도 없이 벽장에 입을 맞춘다.

코스트너는 이날 하루 종일 새 영화 <잠자리>의 촬영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일찍 촬영장에 나가야 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시사실을 나오면서 그는 “이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왜 그는 이 영화를 이토록 좋아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루크는 죽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루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죠.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어하는 겁니다. 때로는 그 결과가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자신이 살았다는 흔적은 남길 수 있으니까요.”

(http://www.nytimes.com/2001/01/19/arts/19WAT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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