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평화 협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선거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 유권자들의 표심(票心)은 1999년 5월 선거 때와는 판이해지기 시작했다.
에후드 바라크 노동당 당수가 압도적으로 총리에 당선된 19개월여 전에는 이스라엘 국민 67%가 팔레스타인과의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지금은 20%만이 긍정적으로 응답했던 것.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지난해 9월 이후 계속된 유혈사태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에 대한 생각이 회의적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조사로 중동평화 협상의 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아리엘 샤론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
특히 샤론은 선거기간 내내 “협상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라고 공약했다.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협상은 없다는 뜻. 따라서 이스라엘은 앞으로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서 강경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양측간의 갈등은 심화될 것이며 레바논 시리아와의 평화협상도 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다.
샤론이 선거기간에 팔레스타인측에 보낸 메시지는 일관되게 ‘현 상황에 만족하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예루살렘은 절대 넘겨줄 수 없다고 밝혔다. 요르단강 서안(팔레스타인에 42% 이양)도 더 줄 수 없고 정착촌도 해체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심지어 철책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샤론이 지난해 9월 28일 알 아크사 사원방문을 강행한 것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영토임을 못박기 위한 행동이다.
샤론은 5일 프랑스의 일간지 르피가로지와의 회견에서도 이를 분명히 했다. 이스라엘의 안보 보장과 팔레스타인 비무장을 전제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을 수용할 수 있다는 것. 추가로 팔레스타인측에 △무장투쟁 종식 △상호 불가침 협정을 내걸었다.
이는 동예루살렘 분할과 요르단강 서안 90% 이상 양보가 가능하다는 바라크 총리의 타협안과는 거리가 너무 먼 것이다. 바라크의 안도 거부한 팔레스타인으로서는 훨씬 비타협적인 조건을 내세운 샤론과 대화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때문에 외신들은 이―팔 관계가 앞으로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팔레스타인 과격단체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할 것이라고 밝혀 소규모 무력충돌이 극단적인 전면전으로 번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그러나 샤론이 협상을 계속할 뜻을 내비친 데다 거국내각도 공약해 변수는 있다. 한 정당의 당수 때와는 달리 전체를 봐야하는 총리에 오르면 강경일변도인 그의 생각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인 셈.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샤론이 판 자체를 깨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테러대비 팔자치지구 전면봉쇄▼
○…이스라엘 치안당국은 6일 테러에 대비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1만4000여명의 병력을 배치. 이날 오전 중부 타이베 등 일부 지역에서는 총선거부를 주장하는 일부 아랍계가 복면을 한 채 투표소로 향하는 길을 막고 지나가는 차량에 돌을 던졌다고 이스라엘 라디오가 보도.
○…샤론 후보는 승리가 확실해지자 야곱 니맨 전 재무장관에게 거국내각 구성을 맡기고 각 정당 인사와 접촉하도록 하는 한편 당선 연설을 준비하느라 바쁜 모습. 이스라엘 법률은 선거일로부터 45일 이내에 새 정부를 구성해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
○…새 외무장관으로 거론되는 노동당의 페레스 전총리는 5일 바라크 총리가 패하면 노동당은 연정에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 노벨상 수상자인 그는 “앞으로도 중동 평화회담을 진행할 기회가 있다면 노동당이 연정 참여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발언.
○…바라크 후보가 소속된 노동당은 자체 조사결과 바라크 후보가 14%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자 낙담. 바라크후보를 지지해온 메레츠 당도 투표가 실시되기 전 바라크후보의 패색이 짙은 것으로 판단.
〈윤양섭기자·예루살렘 외신종합 연합〉laila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