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사기 등 50여개 죄목으로 기소된 뒤 83년 스위스로 도망간 리치를 클린턴 전대통령이 퇴임하는 날 사면해 준 의혹에 대해 의회가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하원 정부개혁위원회(HGRC)는 13일 클린턴이 리치의 전 부인 데니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고 ‘대가성 사면’을 해준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3통의 소환장을 발부했다.
3통의 소환장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와 건립 중인 아칸소주 클린턴 도서관, 데니스가 거래하는 은행을 상대로 발부됐다. 데니스가 93년 DNC에 100만달러 이상을 헌금했고, 클린턴 도서관 건립기금으로 45만달러를 기증한 사실이 지난주 HGRC의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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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되고 있는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사면 스캔들’의 장본인 마크 리치(왼쪽)와 민주당 및 클린턴 도서관에 거액을 기부한 전 부인 데니스가 86년 스위스에서 함께 있던 모습. |
공화당의 ‘클린턴 저격수’를 자처해온 댄 버튼 HGRC 위원장은 국립문서보관소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에도 서신을 보내 리치 사면의 정당성 여부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모든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HGRC는 재무부 대통령 경호국과 국립문서보관소에 보낸 서신에서 99년 6월∼2001년 1월20일까지 클린턴 전대통령과 그의 참모 및 데니스 사이에 오간 전화기록과 내용, 백악관 방문자 명단을 제출해 달라고 했다.
또 제임스 윌슨 HGRC 수석법률고문은 증언을 거부한 데니스를 다시 청문회에 불러내기 위해 증언에 따른 소추면책권을 부여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다.
하원과 별도로 상원 법사위원회는 14일 클린턴이 한 사면 조치의 법적 효력 여부를 따지기 위한 청문회를 개시했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청도 ‘사면 스캔들’에 대한 수사를 검토중이다.
의회 등의 이같은 클린턴 압박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3일 “의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은 앞으로 나갈 때”라며 클린턴의 사면을 쟁점화시키고 싶지 않다는 심중을 나타냈지만 동시에 의회의 조사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상원 법사위의 앨런 스펙터 의원이 “조만간 하원에서 클린턴의 탄핵문제가 정식 제기될 것”이라고 밝힌 점도 공화당의 공세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을 사과함으로써 퇴임 후 가까스로 탄핵 위기를 넘긴 클린턴. 그가 ‘19년 전의 도망자’ 리치를 사면해주는 바람에 또다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