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7월 국가기밀을 한국 외교관에게 넘겨준 혐의로 체포된 발렌틴 모이세예프 당시 러시아 외무부 아주1국 부국장에 대한 구명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친지와 변호인단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외국의 인권운동단체까지 발벗고 나섰다.
이들은 연방보안부(FSB)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모이세예프씨를 ‘한국 간첩’으로 몰았다고 주장하면서 14일 ‘밸런타인 데이’를 그의 이름을 따 ‘발렌틴의 날’로 정했다.
또 ‘프라바’(권리)라는 이름의 인터넷 홈페이지(www.prava.org)를 만들어 일반인의 관심을 촉구하는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마라트 바글라이 헌법재판소장 등 고위 관계자들에게 ‘호소의 편지쓰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에 근거지를 둔 디지털 자유운동(DFN) 등 외국의 인권단체가 이 구명운동에 참여한 것은 최근 러시아에서 잇달아 ‘미심쩍은’ 간첩사건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이로 인해 구소련 시절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이미 공개된 자료를 외국인에게 전달해도 간첩사건으로 조작되는 경우가 있다며 ‘모이세예프 사건’ 외에 적어도 3건의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사법부도 이미 모이세예프 사건의 의혹을 일부 인정한 상태.
모스크바 법원은 모이세예프씨에 대한 간첩죄를 인정해 12년형을 선고했으나 지난해 7월 대법원은 “그가 누설한 기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호하다”며 이 사건을 다시 모스크바 법원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불구속 재판은 허락하지 않아 모이세예프씨는 아직도 감옥에서 지루한 법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당시 이 사건으로 한국과 러시아는 서로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