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전쟁의 의도’와 관련해 그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태평양전쟁’이 아니라 ‘대동아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을 모두 번영시키려고 했다”(대동아공영권 건설)는 당시 일본 군부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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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원인’에 대해 그는 “미국이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전쟁 불가피론’을,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시혜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노로타 예산위원장의 발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訪日) 이후 거의 사라졌던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망언이 다시 시작됐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방일 당시 미래 지향의 한일(韓日) 관계를 강조하며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이 역사 관련 발언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후 양국은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위한 준비 등을 통해 전에 없는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동안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지사의 ‘제3국인’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의 ‘신의 국가’ 등의 발언이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묻혀 지나갔다.
그러나 최근 재일동포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출현, 월드컵의 국명표기 순서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같은 밀월관계는 다시 위협받고 있다.
지방참정권 부여 문제는 참정권을 주지 않고 귀화방법을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으며 문제의 역사교과서는 3월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할 것이 확실시된다.
노로타 예산위원장의 발언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특히 그의 발언은 아시아 국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저술한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주장과 완전히 일치한다.
하마바야시 마사오(濱林正夫) 히도쓰바시대 명예교수는 “국가가 불안해지면서 내셔널리즘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 경제적으로 좋지 못한 사회분위기를 통합시키기 위해 ‘국가의식’을 자극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로타 위원장의 발언은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의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잠복 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치인의 망언 빈도와 대표적 망언 | |||
연 도 | 건 수 | 대표적 망언 | 발언자 |
78 | 2 | 침략전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 후쿠다 다케오 총리 |
82 | 19 | 왜 일본만 비난받나 | 마쓰노 유키야스 국토청장관 |
86 | 27 | 한일합방은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 | 후지오 마사유키 문부상 |
90 | 4 | 반성하고 있다.무릎까지 꿇을 필요가 있나 | 오자와 이치로 중의원 |
94 | 12 | 전쟁목적은 정당했다 | 나가노 시게토 법무상 |
95 | 33 | 대동아전쟁으로 여러나라가 독립했다 | 오쿠노 세이스케 중의원 |
96 | 7 | 위안부는 사실이 아니다 | 이타가키 다다시 중의원 |
97 | 5 | 한일합방과 마을통합이 무슨 차이가 있나 | 에토 다카미 중의원 |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