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불만을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교과서 채택운동과 전망〓‘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각 지부는 요즘 각 시정촌(市町村) 지방의회에 “교과서를 채택할 때는 일선교사의 의견보다는 각 시정촌 교육위원회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이나 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의 결정권을 약화시켜 새 역사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를 늘리겠다는 의도다. 현재 100여개 시정촌 의회가 이같은 진정이나 청원을 받아들였다.
아사히신문은 24일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말라’는 사설을 통해 이 단체의 사전채택운동을 비판했다. 그러자 산케이신문은 25일 ‘교육위원회의 식견이야말로 중요하다’는 반박사설을 게재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한 관계자는 24일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두 차례에 걸쳐 당초 기술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며 “2차 수정에 응한 이상 합격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그는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 중에 터무니없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면서 “한국 중국측의 반발도 고려해 과감하게 수정했다”고 말했다.
▽조정능력 상실한 일본 정부〓82년 교과서 파동 때 일본 정부가 ‘교과서 검정기준에 이웃 국가의 입장을 배려한다’는 ‘근린제국조항’을 만든 배경에는 한국이나 중국의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 스스로 ‘조정능력’을 발휘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요즘 일본에 한국이나 중국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세력은 없다.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는 퇴진압력을 받고 있어 교과서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고 외무성도 간부의 기밀비 유용사건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교과서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문부과학성의 최고책임자인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문부과학상은 문부상 시절인 98년 “현행 역사교과서는 부정적인 요소를 너무 많이 담고 있다”는 발언을 했을 정도다.
자민당도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 자민당의원(전 법무상)은 “교과서 검정은 주권 사항”이라며 “중국이 정치적 압력을 가해온 데 대해 일본은 독립국으로서 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