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한―러수교 직후 봇물을 이루던 양국 경협은 지난 4∼5년 사이 극도로 침체돼 있다. 지난해 한―러간 교역규모는 28억달러. 한국의 국가별 교역규모 순위에서 러시아는 20위권 밖이다. 또 18억달러에 이르는 구소련 경협차관 미수금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한국기업의 기대감도 크게 줄었다. 러시아 역시 한때 ‘부자나라’로 생각했던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자 기대치를 대폭 낮춘 상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러시아는 또다른 차원의 경협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정여천 박사는 “러시아는 큰 상품시장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정치 경제적 상황으로 확대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가진 나라”라고 말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 철도의 연결, 가스전 개발 등 지도 위에서만 상상했던 대형 사업들이 동북아 화해구도의 정착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철도 연결과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은 성사만 되면 한국, 북한, 러시아 3자 모두 이익이다. 우선 경원선과 TSR를 연결하는 사업 역시 한국은 일본―한반도―중국―러시아―유럽을 잇는 국제철도망에서 동북아국제물류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유럽지역으로 실어 나를 화물운송비를 절반으로 낮출 수 있다. 또 러시아와 북한은 차량 통과료나 운송수입을 얻는다. 이르쿠츠크 가스전 개발도 러시아는 에너지원을 이용해 달러를 벌어들이고 한국은 안정적으로 자원을 확보하며 북한은 수송파이프 통과료를 챙길 수 있다.
3자간 경제협력의 또다른 매력은 경협이 활성화되면 그 자체만으로 한국과 북한이 모두 정치 경제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북한이라는 변수, 재원조달문제, 미상환 경협차관의 해결, 양국의 불투명한 경제상황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행히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경제는 지난해 7% 가량 성장하는 등 빠른 속도로 되살아나고 있다. 한―러경협이 다시 활기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6일부터 시작된 한―러경제공동위에서 양국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