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지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기내에서 ‘이흐람’이라는 순례복으로 갈아입었다. 다섯 자 정도 길이의, 바느질하지 않은 흰 천 두 장으로 온몸을 감쌌다. 이흐람은 목욕을 깨끗이 한 다음 경건한 마음으로 입어야 한다.
▼100여년 전통방식 숙소 배정▼
하지 시작 하루 전날이었으나 메카에 들어가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메카대사원(하람성원)을 찾았다. 중앙에 있는 ‘카바’를 왼쪽으로 일곱 번 잔걸음으로 돌고 그 옆에 있는 ‘사파’ 언덕과 ‘마르와’ 언덕 사이를 오가며 기도한다. 이를 ‘우므라(소순례)’라고 부른다. 숙소는 1000여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같은 지역 출신끼리 함께 모아 배정된다. 셰이크(유지)라고 불리는 주인은 배정된 순례객과 말이 통하도록 조정하는 것이 관례다. 정해진 숙박비는 없으며 순례자가 각자 알아서 낸다. 메카 거리는 전통 의상을 입은 각국 순례자와 이흐람 차림의 순례자로 가득하다. 상점도, 찻집도 앉을 틈이 없다. 나라와 민족이 다른 사람도 이곳에서는 곧잘 어울린다. 대개 아랍어나 영어를 쓴다. 말이 안통해도 경건한 자세로 예의를 지키며 양보한다.
하지 첫날. 새벽 4시경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에 잠이 깼다. 메카대사원 내 ‘카바’로 가니 벌써 10여만명의 순례자가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다. 잔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엄숙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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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하지에 참가한 김용선 교수(오른쪽)와 부인. |
▼순례철 미나평원은 새햐얀 도시▼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마련해준 자동차편으로 메카에서 5㎞ 떨어진 미나평원에 도착했다. 여느 때 같으면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인파가 넘쳐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여기에는 낙타 양 등을 알라에 바치는 제단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순례코스인 ‘악마의 기둥’이 있다. 평소에 사람이 살지 않는 미나평원은 순례자가 머물 수 있도록 지어놓은 수많은 천막으로 이때는 ‘하얀 도시’로 변한다.
내가 머문 천막은 1블록 28거리 B 천막이었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앙 아시아 등에서 온 아시아 지역 순례자용이었다. 한참을 줄을 서 받은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밤을 지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몹시 불편했다.
3월인데도 걸어다닐 때는 햇살이 뜨거워 양산 없이 걷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평소 한 푼 두 푼 아껴 모은 돈으로 종교적 희열과 축복을 받기 위해 하지에 참여한다. 노자를 아껴 가족과 친지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오갈 때 차를 타지 않는 사람도 많다.
▼평생 모은 돈 '종교희열'에 바쳐▼
사우디 당국이 전염병 예방에 애를 썼지만 상당수가 독감에 걸려 천막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기야 순례 도중 숨지면 가장 먼저 천국에 올라간다고 이슬람교도들은 믿고 있으니 순례를 와서도 건강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둘째날 오전 미나에서 9㎞ 떨어진 아라파트산에 도착, 천막에서 조금 쉬었다가 오후에 산에 올랐다. 풀 한 포기 없는 돌산으로 아담과 이브가 해후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예언자 마호메트가 마지막 설교를 한 곳으로 전해진다. 돌로 만들어진 단 위에서 베풀어진 설교를 듣고 일어나 알라에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다. 돌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각기 국기를 앞세우고 올라오는 순례객 행렬이 개미 행진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해지기 전 아라파트를 떠나 메카로 돌아가는 길에 ‘무즈달리파’라는 곳에서 저녁식사와 밤예배를 올렸다. 모포 한 장으로 추위를 이기며 잔돌 49개를 주웠다. 내일 미나평원에서 있을 행사 때 쓰기 위한 돌이다.
셋째날 아침 미나평원 밖에서 희생제(이둘 아드하)를 치렀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했던 것처럼 낙타 양 등을 잡아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동물을 잡는 이들에게 수고비를 준 다음 양고기를 먹었다. 오후에는 미나 남쪽에 있는 방추형 돌탑에 준비해온 돌을 던졌다. ‘악마의 기둥’이라는 3개의 돌탑에 돌을 던지면 악운이 사라진다고 믿는다. 돌을 던지는 의식을 마친 다음 머리를 짧게 깎고 메카로 돌아왔다. 카바를 다시 일곱 번 돌고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하지 순례를 마쳤다.
김용선(金容善)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