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우선 ‘시스템의 재정비’를 꼽는다. 대외정책을 맡는 청와대 외교 통일 안보부처간에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스티븐 보스워스 전 주한미국대사는 최근 외교안보전문 연구기관인 보스턴대 ‘플레처스쿨’에 기고한 논문에서 “미국 등 4강이 한반도 평화정착이란 공동목표를 추구한 것은 김대중대통령의 역량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평가대로 대북포용정책의 추진은 김대통령의 외교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문제는 3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났다. 4강외교의 주축인 미국과의 정상외교에서 이견이 노정될 경우 대북포용정책도, 다른 3강과의 관계도 원활할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준 것.
실제로 한미정상회담의 경우 실무 차원의 치밀한 준비가 부족했고, 통일비서관조차 데리고 가지 않았던 ‘대통령 1인 외교’가 회담의 성과를 제한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많다.
부처간의 협조관계도 문제다. 외교통상부는 현실적으로 ‘국제문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남북문제 논의과정에서 배제됨으로써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통일, 국방부의 불만도 많다. 국방부는 한미간 불협화음의 한 원인이 됐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한 외교부의 안이한 인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4강외교 전략의 부재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NMD 파문으로 물러난 이정빈(李廷彬)전 외교부장관은 퇴임하면서 ‘자존외교’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자존외교, 등거리외교가 어려운 게 현실. 4강이라고 해도 똑같은 4강이 아니라면 4강을 다루는 데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NMD와 관련한 한―러 공동성명은 이 같은 우선순위를 무시함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스스로 좁힌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외교에 대한 초당적 지지가 부족하다는 것은 외교 당국자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한 당국자는 “다른 선진국들을 보면 국내문제를 놓고는 싸우더라도 외교에 관한 한 초당적 협조를 아끼지 않는데, 우리는 외교를 하려고 하면 어느 순간부터 내교(內交)가 되고 만다”고 자조했다.
<하태원기자>scooo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