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문제점▼
▽4강 외교의 위기〓정부는 지난해 한미일 대북공조를 토대로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한반도에 탈냉전 바람을 몰고 왔다.
이는 ‘동맹’인 미국과 ‘우방’인 일본 이외에도 과거 적대국이었던 중국 러시아의 지지와 협조가 필요한 새로운 상황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과거 냉전시대 외교는 동맹과 ‘같은 줄’에만 서 있으면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1차 방정식’이었지만 지금은 중국 러시아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고차 방정식’이 돼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는 ‘고차 방정식’을 여전히 1차적으로 푸는 한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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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러 저자세' 외교부서도 지적▼
정부는 △중국통 외교관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기용하고 △외교부장관 출신을 주중 대사로 보내는 등 중국의 역할을 특히 중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는 미국측의 불필요한 오해를 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키기 위해 1년 가까이 정부가 보였던 ‘저자세’나 차관상환 문제 처리 방식에는 외교부 내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대일관계는 최근 교과서 왜곡문제가 불거지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의 ‘의구심’〓지난달 8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양국의 대북 시각차에 대해 외교 실무진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내재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김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찰떡 궁합’이 문제를 가리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
2월 이정빈(李廷彬) 당시 외교부장관과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이 잇따라 방미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런 인식차를 좁히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한 외교소식통은 “두 사람이 대북 포용정책만 역설하는 바람에 양국 정부간의 골이 더 깊어졌다”고 털어놓았다.
김 대통령이 방미 중 느닷없이 남북 기본합의서와 포괄적 상호주의를 강조한 것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강한 의구심을 표명하자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그는 특히 “당시 미측은 한국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평화’라는 용어에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며 “선언이든 협정이든 남북간의 ‘평화’는 곧 ‘정전(停戰)상태의 종료’를 의미하고 그것은 주한미군 3만7000명의 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문제 美 민감한 반응▼
김성한(金聖翰)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국 외교가 북한을 의식하는 폭과 깊이가 지나치게 커져 4강 외교를 대북정책에 맞추는 행태를 보였다”며 “그래서 한미관계를 소홀히 했고 중국 러시아와의 협조관계를 강화해야 대북정책이 성공할 것처럼 착각했다”고 말했다.
▼남북-대미관계 조화 못이뤄▼
▽‘소방 외교’에서 ‘예방 외교’로〓4강 외교의 실타래는 한미관계에서 꼬이기 시작한 만큼 그곳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함성득(咸成得)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김 국방위원장의 조기 답방에 매달리는 등 남북관계를 조급하게 이끌어 한미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국신(金國新)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의 방향을 상실할 경우 우리의 대북포용정책도 함께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4강 외교의 틀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두복(朴斗福)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미 동맹체제를 한반도의 탈냉전 분위기에 맞춰 보다 강한 틀로 새롭게 정비해야 오히려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