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물론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의 부패 의혹을 둘러싼 정국 혼란 때문이다. 와히드 대통령은 전날 야당의 사임 요구를 일축하면서 “국회가 축출 시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전국적으로 폭동이 발생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29일에는 와히드 대통령 지지자 40만 명이 자카르타 종합운동장에서 모임을 갖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 예정이다. 30일 국회가 와히드 대통령에게 2차 해명요구서를 발부할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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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혼란한 정국 |
최근 들어 자카르타 시내는 거의 매일 시위로 소란하다. 17일에는 이슬람대학생연합 소속 학생 수백 명이 와히드 사임에 반대하며 가두행진을 벌였다. 정국 혼란을 틈탄 민원성 시위 도 잦다. 18일에는 시내 중앙 감비르역 앞에서 노점상 수백명이 경찰의 단속에 항의하며 집단시위를 벌이다 경찰과 충돌, 10여명이 다쳤다. 19일에는 반공 시위대가 시내교통을 한때 마비시켰다.
사회 혼란을 틈탄 강력사건도 늘었다. 18일 자카르타 시내에서만 권총강도 사건이 3건 발생해 두 사람이 죽었다. 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현지인은 “특히 외국인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으니 시내에서는 절대 걸어다니지 말라”며 “차를 탔을 때도 문을 잠그고 낯선 사람이 다가와 뭐라 해도 창문을 열어 주지 말라”고 충고했다.
와히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 중에는 ‘진실의 수호자들’이란 이름의 ‘결사대’가 있다.와히드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동부 자바의 수라바야를 중심으로 수십만 명이 이 단체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각 지역에서 수하르토 정권시 집권당이었으며 현재 와히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고 있는 골카르당 당사를 습격하고 있다. 정예요원 수백 명은 군사훈련을 받으며 반대세력과의 유혈충돌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와히드 대통령의 조부가 주도해 1926년 세운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들라툴 울라마(NU)의 움직임도 심상찮다.29일 자카르타 집회도 이 단체가 준비한 것. 와히드 대통령이 15년간 의장을 지낸 이 단체 회원은 무려 4000만명.
자카르타 중앙본부에서 만난 이 단체 교육문화분과의장 체쳅 시아리푸딘(59)은 “선거로 뽑힌 대통령을 국회가 뚜렷한 잘못이 밝혀지기도 전에 탄핵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일부 회원이 결사대를 만든 것은 각자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최선의 해결책은 조기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뜻을 확인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단체인 무하마디아(회원 2500만명)는 NU에 맞서 와히드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지식인 중심의 계몽 단체 성격이 강한 이 단체 부의장 딘 샴수딘(42)은 “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이 물러난 뒤 개혁이 시작됐지만 제대로 이뤄진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헌법상 권한을 가진 국회나 국민협의회가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하면 그에 따르면 된다”고 순리에 따른 정국 해법을 강조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중집회 개최에 대해 그는 “사임 지지자들과 충돌해 폭력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며 대통령 지지세력의 대중집회를 비판했다.
또 다른 이슬람단체 이크흐와눌 무슬리민도 “NU측이 폭력시위에 나서면 우리도 15만 회원을 동원해 맞서겠다”고 밝혔다.
와히드 대통령에 대한 지지파와 반대파의 충돌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찰과 군도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29일에는 경찰 1만명, 30일에는 1만8000명을 동원해 폭력사태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자카르타 경비대도 “시위대들이 자카르타 시내에 무기를 갖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엄중한 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긴장이 고조되면서 누르홀리시 마지드 등 저명한 이슬람학자들이 와히드 대통령에게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결사대의 폭력시위를 막아달라”고 권고했으나 와히드 대통령은 “내가 나서서 지시할 사안이 아니다”며 사태를 방관하고 있다.
<자카르타=이영이 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