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미사일 방어계획]美 '미사일 패권' 강행 논란

  • 입력 2001년 5월 1일 18시 22분


부시 미대통령(가운데)의 취임 100일 축하오찬
부시 미대통령(가운데)의
취임 100일 축하오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일 미사일방어체제 추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발표함에 따라 이 문제는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적 현안으로 대두하게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2일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의 잇단 실험 실패에 따라 NMD추진에 대한 결정을 차기 행정부로 넘기겠다고 발표한 지 9개월만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때부터 NMD의 적극적 추진을 천명해 왔기 때문에 이번 결정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NMD는 적이 발사한 미사일을 지상 미사일을 통해 중간에서 요격하는 체제였지만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이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어서 현실성 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 언론과 안보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이 추진할 미사일방어체제는 지상뿐만 아니라 공중과 해상을 통해서도 적의 미사일을 요격하는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방어체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엔 보잉, TRW, 레이시온, 록히드 마틴, 제너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의 주요 군수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최첨단 레이더와 위성 장비 등 관측 장비와 미사일 레이저 등을 이용해 북한 이라크 등 ‘불량국가’가 발사하는 미사일을 가급적 발사 초기 단계에서 요격하는 방안을 개발중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미국과 해외 주둔 미군, 우방국들을 보호하겠다는 구상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8일 “더 이상 NMD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미국이 일본에 대한 미사일방어계획을 추진할 경우 일본의 입장에선 NMD가 되겠지만 다른 나라의 입장에선 ‘지구 미사일 방어’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조지 부시 전대통령 시절인 91년 당시 스티븐 J 하들리 국방부차관보가 추진하다 92년 클린턴 행정부의 출범으로 무산됐던 ‘전지구적 제한공격방어계획(GPALS)’과 유사하다. 하들리는 현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으로 있다.

미국은 이같은 미사일방어체제를 추진하는 대신에 핵탄두를 최소한으로 줄여 국제사회를 설득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현재 7200기 정도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97년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과 이를 2500기로 감축해 나간다는데 합의한 바 있다.

새로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 우선 기술이다. 미사일 전문가인 시어도어 포스톨 매사추세츠공과대(MIT)교수 등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적의 미사일을 교란 물체와 분간해 요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미사일방어체제는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돈도 문제다. NMD 추진에만 600억달러가 들 것으로 예상됐던 것에 비춰 보면 이보다 범위를 넓힌 새 체제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이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또 국제 여론도 좋지 않다. 미사일방어체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시작된 셈이다.

▼국제사회 탐탁찮은 눈길▼

미국의 새로운 미사일방어체제 구상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은 싸늘하다. 러시아 중국 등은 물론 유럽의 우방국들도 탐탁지 않은 눈길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힘을 앞세운 미국 중심의 전략에 대한 경계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독일 프랑스 영국 캐나다의 국가원수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해 미리 설명한 것도 그 같은 기류를 염두에 둔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가장 반대하는 국가는 아무래도 러시아와 중국. 미국은 방어무기라고 주장하지만 이 시스템이 공격용으로 전환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국제적인 힘의 균형을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하게 재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을 위해 72년 구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미사일요격(ABM)협정의 개정이나 파기를 고려하는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7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추진을 비난하며 “ABM협정의 파기는 군비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독일 프랑스도 미사일방어체제에 반대한다. 영국은 의견이 갈라져 있어 토니 블레어 총리는 서방국가 원수 중 거의 유일하게 미국의 태도를 이해하는 편이지만 로빈 쿡 외무장관과 의회는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를 위한 레이더 기지를 영국 북부에 건설하는 방안을 협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한국은 2월 한―러 정상회담 때 ABM 조약 보존 필요성을 밝혔다가 미국으로부터 러시아에 동조하느냐는 항의를 받고 이를 해명하느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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