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왜 왔을까=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김정남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그의 방문목적을 관광과 정보기술(IT) 시찰 등 두가지로 보고 있다. 또 크게 보면 후계자로서의 제왕수업 이라는 시각이 많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征夫) 게이오대 교수(북한정치)는 그가 특수임무를 갖고 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정치무대에 데뷔하기 이전에 되도록 해외경험을 많이 쌓고 견문을 넓히려 했던 것 같다 고 추측한다.
그가 체포직후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다 고 밝힌 것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본에 호감을 갖고 있는 그가 가족들에게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 이라며 또 아키하바라 등에 들러 일본의 IT분야를 둘러보는 다목적 관광으로 생각된다 고 말했다.
▽왜 도미니카 여권인가=그는 도미니카에서 발행한 위조여권을 갖고 있다가 체포됐다. 나리타(成田)국제공항 입국심사국 직원은 그가 도미니카 여권을 제시했는데 전혀 남미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스페인어도 전혀 하지 못해 수상했다 고 말했다. 일본 법무성측도 도미니카 위조여권이 발견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위조여권은 출신국과 가까운 나라 것을 사용해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나 가장 손쉬운 중국여권은 일본이 불법체류자 문제로 더욱 까다롭게 심사하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남미여권은 일본입국 비자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는 이점이 있다. 특히 마침 일본이 지난달말부터 시작된 황금연휴로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는 시기여서 입국심사가 허술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듯하다.
▽경호원 없는 허술한 여행=북한의 후계자 물망에 오르는 거물이 경호원도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한때 김정남 망명설이 퍼지기도 했다.
공산당기관지 아카하타의 평양지국장을 지냈던 하기와라 료는 김정남은 배다른 동생 정철과 후계자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만약 후계싸움에서 패배했다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망명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체포후 신분을 선뜻 밝히지 않고 중국으로 보내달라 고 요구한 점 등을 보면 망명설은 사실무근에 가깝다.
그가 외국어에 능통하고 호방한 성격인데다가 가족단위의 여행인 만큼 경호원을 물리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와 동행하다 체포된 여성은 북한 고려항공사 사장의 딸 신정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김정남보다 연상이고 둘사이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있으나 정식결혼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사전정보 있었나=황금연휴기간중 관광객으로 혼잡한 나리타공항에서 김정남 일행을 적발한 것은 일본이 이들의 입국정보를 사전에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입국심사장 주변에는 요원들이 미리 배치돼 김정남 일행이 입국장을 통과하는 순간 위조여권소지를 알리는 신호가 울리자마자 일행을 에워싼후 체포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결정적인 제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정보를 흘렸으며 일본은 왜 그 일행을 급거 체포했는지도 궁금해진다. 미국 CIA는 김정남의 얼굴사진 지문을 모두 갖고 있으며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북미관계가 껄끄러운 가운데 미국이 북한의 약점을 잡으려 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일본 역시 제발로 걸어들어온 거물을 붙잡았다가 풀어줌으로써 북일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삼으려했다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 로 볼수도 있다.
▽일본엔 얼마나 자주 왔나=김정남으로 보이는 인물이 소지한 위조여권에는 이전에도 세차례 일본에 입국했던 것으로 기록돼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공안당국은 1995년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극비입국해 도쿄주변을 관광했던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 당시 김정남은 시내 일류호텔에 머물면서 디즈니랜드 등을 관광했다는 것. 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총서기 취임이전에 위조여권을 이용해 종종 일본을 방문, 도쿄 번화가를 거닐었다는 소문도 있다.
김정남은 일본에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어 최소한 세차례 이상 일본을 방문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김정남은 해외여행을 할때는 중국 베이징(北京)을 자주 이용하며 베이징체류때는 중국주재 북한대사관이나 서우두(首都)공항 인근빌라 등에서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이영이특파원기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