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키브 헬릴 OPEC 의장(62)은 1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국제 유가 폭등 이후 OPEC에 쏟아지는 국제적인 비난을 의식한 듯 이렇게 강조했다.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에너지장관인 헬릴 의장은 14일부터 17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제13회 액화천연가스 국제회의 및 전시회(LNG 13)에 참석하기 위해 12명의 알제리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다.
헬릴 의장은 처음 방문한 한국이 사회 경제적으로 이토록 발전한 나라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곧 공식 방문을 하기를 원한다고 방한 소감을 밝힌 뒤 OPEC 의장으로서 국제 유가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자세히 밝혔다.
-올 들어 국제 유가는 30달러선까지 치솟았던 지난해말에 비하면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1년전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높다. 현재 국제 유가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OPEC 유가(OPEC 회원국이 생산하는 7개 원유를 기준으로 산정되는 유가)는 배럴당 25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금의 원유가 수준은 적정하다고 본다. 소비자들이 석유 제품에 대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은 원유 생산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세금이나 석유회사들의 마진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유회사들은 유럽에 비해 6배의 마진을 붙여 석유 제품을 팔고 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수입 가격의 4배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선진공업국은 작년 석유 제품에 부과하는 세금으로 1조달러의 수입을 올렸는데 실제로 원유를 생산하는 OPEC 국가의 수입은 2500억달러로 4분의 1에 불과하다.”
-다음달 5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각료회의에서 증산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은 없는가.
“우리는 이 회의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증산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회원국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현재 원유 생산량에는 문제가 없다. 전세계 소비국의 원유 저장량을 조사한 결과 OPEC는 원유 생산량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석유 수요에 맞춰 앞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것이다.”
-국제 사회는 유가 파동이 생길 때마다 OPEC를 대표적인 ‘가격 카르텔’로 지목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는 요즘에도 이같은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한 견해는….
“물론 소비국에서 OPEC를 비난하는 상황을 이해하지만 OPEC로서도 할말이 많다. OPEC는 그동안 석유 시장을 안정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유가가 출렁거리는 것을 소비국만큼 OPEC도 원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유가는 상당 부분 소비국의 책임이 크다. 그중 하나로 소비국의 정유사 등 석유 관련 업체의 거대 인수합병(M&A) 추세를 지적할 수 있다. 인수합병 후 비용 절감을 위해 정유 설비를 대폭 감축함으로써 적절한 석유 공급 능력이 저하됐다. 적절한 석유 공급의 흐름이 끊기면서 유가가 출렁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헬릴 의장은 OPEC의장은 회원국 각료 중에서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오일 쇼크 때 사우디아라비아의 야마니 석유상이 OPEC의장으로서 전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것을 지적하며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고 있느냐고 묻자 웃으며 “나는 그런 힘은 없다”며 “OPEC 회원국의 이견을 조정해 합의에 이르도록 하는 게 의장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OPEC 회원국이자 같은 이슬람 국가인 이란과 이라크에 가해지고 있는 미국의 원유 수출 제한 조치에 대한 견해는….
“논평을 하기가 힘든 문제다. 주권을 가진 미국이 내린 결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OPEC 회원국들은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유엔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OPEC 사무총장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러시아가 OPEC 12번째 회원국이 될 가능성은 있는가.
“러시아는 현재 OPEC의 옵서버 자격을 가진 나라이다. 앞으로 OPEC 회원국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OPEC의 역할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OPEC는 국제 원유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생산량을 통제해 유가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나는 앞으로도 OPEC 의장으로서 회원국간의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석유를 전량 수입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OPEC 책임자로서 에너지 소비에 대한 충고를 한 마디 해달라.
“무엇보다도 유가정책을 거시경제정책의 차원에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가 안정을 위해 유가를 왜곡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공급 측면에서 경쟁을 촉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부 정유업체나 공급업체가 시장을 독점할 경우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석탄 천연가스 대체에너지 등 에너지원을 다변화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차키브 헬릴 OPEC 의장 약력 △1968년 미국 텍사스A&M대학 박사학위 취득 △쉘 등 국제 석유회사에서 근무 △1973∼76년 알제리 대통령 기술자문역 △1980∼99년 세계은행 근무 △1999년 이후 알제리 에너지 장관 △알제리 국영 석유회사 소나트락 회장
▼차키브 헬릴 OPEC의장 약력▼
·1968년 미국 텍사스 A&M대학 박사학위 취득
·쉘 등 국제 석유회사에서 근무
·1973~76년 알제리 대통령 기술자문역
·1980~99년 세계은행 근무
·1999년 알제리 에너지 장관 임명
·현 알제리 국영 석유회사 소니트락 회장 겸임
<정리〓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