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히드 탄핵 임박…19개월만에 난파위기

  • 입력 2001년 5월 29일 19시 16분


인도네시아 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99년 10월 탄생한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 정권이 출범 19개월만에 난파 위기를 맞았다.

와히드 대통령은 28일 의회의 탄핵 움직임을 막기 위해 준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의회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6개 주요 정당이 대통령 탄핵 절차에 돌입하기 위해 30일 의회 본 회의를 강행하기로 해 집권 후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와히드 대통령은 준비상사태 선포를 통해 이번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가 소속된 국민각성당측은 29일 수실로 밤방 유드호요노 안보장관에게 “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대통령 탄핵을) 선동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고 촉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유드호요노 안보장관과 모하마드 마흐푸드 국방장관 등 와히드 대통령의 핵심 측근 대부분이 비상사태 선포에 반대해 와히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와히드 대통령은 의회의 탄핵 시도가 정치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자신이 의회에 출석해 해명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해 대신 의회와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강경대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의회가 겉으로는 조달청 공금 횡령과 브루나이 국왕 기부금 증발 사건 등 두건의 금융 스캔들을 탄핵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와히드 대통령의 ‘정치적 배신’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른 정파의 옹립 형식으로 집권한 소수당 출신의 와히드 대통령은 취임 후 다른 정당과의 거국 내각을 통해 권력을 분점할 것을 약속했으나 지난해 4월 야당인 인도네시아 최대 정당 민주투쟁당과 골카르당 소속 각료 2명을 일방적으로 해임하는 등 ‘배신’을 했다.

그러나 정국은 여전히 와히드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동안 와히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은 29일 대통령의 권력 분점 제의를 최종적으로 거부함으로써 결별 의사를 분명히 했다. 메가와티 부통령은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민주투쟁당에 국민협의회 특별총회 소집에 찬성표를 던지라고 주문했다. 궁지에 몰린 와히드 대통령에게는 결정타나 다름이 없다.

의회가 국민협의회 소집결정을 내린다 해도 정치적인 해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협의회 특별 총회가 소집되려면 약 2달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하며이 기간에 와히드 대통령이 야권에 타협책을 제시함으로서 위기를 극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골카르당 총재이자 하원의장인 악바르 탄중은 28일 “특별총회 소집이 결의되더라도 정치적 타협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말해 향후 와히드 대통령의 태도에 따라 대통령직 축출 시도를 중단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印尼 국민협의회란▼

인도네시아 정국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혼미를 거듭하면서 탄핵 절차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인도네시아 의사결정 기구는 직선 의원 462명으로 구성된 의회(DPR·하원에 해당)와 형식상 최고기구인 국민협의회(MPR·상원에 해당)로 구성된다. 국민협의회는 지역대표, 군부대표, 사회직능단체 대표 등 238명과 의회 의원 등 총 700명으로 구성된다. 국민협의회는 대통령 선출과 탄핵권, 개헌안 최종승인과 전쟁선포권 등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의회는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민협의회 특별총회를 요구할 수 있다.

의회는 지난달 30일 부패스캔들에 관해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제출한 해명서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달 30일까지 2차 해명서를 보내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와히드 대통령은 28일 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강경한 태도여서 2차 해명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게 되면 의회는 30일 총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위한 국민협의회 소집을 의결할 가능성이 크다.

MPR 총회 소집이 결정되더라도 와히드 대통령의 해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아미엔 라이스 국민협의회 의장은 총회 소집 일정과 관련해 “의회의 총회 요구가 있으면 두 달간 준비를 거쳐 7월 말경 총회를 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MPR 총회에 탄핵안이 회부되면 가결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와히드 정권은 소수연합정권인데 대통령 선출 때 그를 옹립했던 이슬람계 세력이 대부분 등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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