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왕가를 둘러싼 예언과 전설이 현실로

  • 입력 2001년 6월 3일 23시 54분


‘불길한 전설이 현실로….’

네팔 왕실 가족의 충격적인 참사는 왕실을 둘러싼 각종 예언과 전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AFP통신은 숨진 비렌드라 국왕의 선조가 230년 전 국가를 건설했을 때부터 전해오는 불길한 예언이 실현된 것이 이번 참사라고 전했다.

비렌드라 국왕의 조상인 프리티비 나랴얀 왕은 1768년 군웅할거하던 부족을 통합해 단일국가인 구르카 왕조를 이뤘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프리티비 나라얀 왕은 카트만두 계곡으로 행차를 하던 중 힌두교 신 고라크 나드를 만나는데 이 때 왕은 거룩한 나드신에게 발효 우유를 바쳤고 나드신은 이를 받아마시고 다시 토해 낸 뒤 이를 되돌려줬다.

역겨워진 왕은 신이 토한 음식물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고 우유는 그의 발 위에 쏟아졌다. 신은 자신이 토한 음식을 되받아 마셨다면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왕의 자만심을 나무랐다. 신은 프리티비 나라얀 왕이 쏟아버린 우유가 자신의 발가락 10개를 덮었으니 그가 세운 왕조는 앞으로 세대가 10번 변한 뒤 끝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계시했다. 공교롭게도 1일 밤 궁정파티에서 장남이자 왕위 계승자인 디펜드라 왕세자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숨진 비렌드라 국왕은 프리티비 나라얀 왕의 11대 손이었다.

네팔의 저명한 점성가이기도 한 밀란 샤카 카트만두 트리부반대 교수는 “네팔 역사에 나오는 이 전설이 단지 우연의 일치였든, 예언이 실행에 옮겨졌든 간에 눈앞에 이뤄졌다”고 놀라워했다.

이번 참사의 실제 원인이 된 왕세자의 결혼 문제 역시 점성술사들의 예언을 믿은 왕비의 반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숨진 아이스와랴 왕비는 ‘왕세자가 35세 이전에 결혼할 경우 국왕이 비명횡사할 것’이라는 점성술사들의 말을 믿고 왕세자의 결혼을 극구 반대해 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뉴델리에서 발행되는 익스프레스는 왕비는 딸 시루티 공주가 시집을 간 고라크 라나가 여성과 혼인하기를 바랐다고 보도했다.

왕세자는 왕비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무 재무장관을 지낸 파스후파니 라나의 딸 데브야니와 최근 비밀 결혼식을 치렀으며 이에 대한 승인 여부가 이번 비극의 직접적인 발단이었던 것. 왕실을 존경하고 있는 네팔인들은 디펜드라 왕세자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있다. 네팔인들은 정부와 왕궁의 이 같은 발표가 왕가에 대한 음모라며 총리 집무실 인근에서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비렌드라 국왕의 동생으로 섭정을 맡은 갸넨드라는 이날 국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발표된대국민 담화에서 “이번 참사는 자동 소총이 갑자기 발사되며 발생했으며 국왕과 왕비 등 왕실 일가 8명은 사고 직후 군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펜드라 왕세자가 가족들을 살해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데브야니의 가문은 네팔 총리를 세습했던 명망가이며 어머니 우샤 라제 신디아는 인도 중부 마드야 프라데시 왕실 가족 중 1명.디펜드라 왕세자와 데브야니는 카트만두 왕궁에서 그리 멀지 않은 피자레스토랑에서 낭만적인 저녁식사를 즐기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다는 것.두 살때 왕위계승자로 선정된 디펜드라 왕세자는 영국의 명문 이튼칼리지와 미 하버드대학을 졸업했고 데브야니는 인도 사립학교를 거쳐 델리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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