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압승 배경과 과제

  • 입력 2001년 6월 8일 18시 41분


7일 영국 총선에서 압승해 재집권에 성공함으로써 토니 블레어 총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튼튼히 했다.

총선 압승의 최대 요인은 호경기였다. 여기에 긴축재정 정책까지 맞물려 생겨난 사상 최대의 재정 흑자 규모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블레어 정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블레어 정권이 승리한 60%는 행운 탓이며 40% 정도가 정책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정치 평론가도 있다.

긴축재정으로 유권자의 대다수를 점하는 중산층에 고통을 준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민영화에 따른 공공서비스 효율화 성공, 27만명의 고용 창출 정책 등이 반감을 상쇄해 주었다. 빈곤층과 연금 생활자 등 사회적 약자는 공평한 사회를 내건 블레어 정권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인 보수당이 역대 최약체였다는 점도 노동당 압승을 낳은 요인이 됐다.

블레어 총리는 선거 공약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의료 및 교육투자 확대 등 민생분야의 개혁을 내걸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복지분야를 담당할 노동가족부를 신설하는 등 정부 조직 개편과 대폭적인 개각이 뒤따를 전망이다.

2기 노동당 정권의 과제는 영국 내부가 아닌 외부에 많다.

가장 큰 현안이 유로화 도입 여부.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는 내년부터 유로화를 공통 화폐로 사용한다. 그간 영국 국민의 다수가 유로화를 도입하는 데 거부감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블레어 총리는 “영국경제가 프랑스와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금리 수준 일치 등 5개 조건이 충족되면 국민투표를 거쳐 도입하겠다”고 다소 애매한 견해를 밝혀 왔다.

하지만 60%를 웃돌던 반대여론이 최근 다소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자 그는 유로화 도입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9월에는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하고 내년 가을쯤 가입 찬반을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집권에 성공함에 따라 유로화 도입 시기가 다소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또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와 유럽의 신속대응군 창설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태도를 표명해야 한다.

그는 지난달 의회에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MD에 대해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밝혀 전통적인 우방을 믿었던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블레어 총리는 2기 정권을 맞아 보다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미국뿐만 아니라 MD 추진에 다소 부정적인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대해서도 명확한 견해를 밝혀야 한다. 또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과는 별도로 유럽 신속대응군을 창설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까지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결단을 내릴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블레어는 누구인가▼

1997년 보수당의 18년 장기 집권을 허물고 노동당 시대를 꽃피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48)는 이번 재집권을 통해 2차 세계대전 후 가장 성공적인 영국 정치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94년 노동당 당수에 취임한 그는 당헌 개정 등을 통해 지나치게 좌익으로 흐르던 노동당을 중앙으로 끌어들였으며 전통 사회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접목한 ‘제3의 길’이란 새 정치이념을 제시해 영국은 물론 유럽 사회주의의 변혁에 큰 물꼬를 트기도 했다.

탁월한 리더십과 소신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해온 데다 뛰어난 언변과 젊고 지적인 이미지, 독실한 기독교 신앙,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란 장점까지 합쳐져 ‘TV시대에 가장 완벽한 정치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본명은 앤서니 찰스 린튼 블레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부유한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났다. 변호사이던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보수당원이었다.

옥스퍼드대 법대 재학시절 장발을 하고 ‘어글리 루머스’란 록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반항아적인 기질을 보였던 블레어는 75년 한 노동당 의원과의 인연으로 노동당에 입당했다. 졸업 후 변호사 생활을 하다 같은 변호사로 좌익운동가 집안의 딸인 셰리 부스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

정치가의 길을 택한 그는 83년 약관 30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으며 얼마 되지 않아 노동당 내 중도개혁파의 기수로 떠올랐다. 94년 존 스미스 노동당수가 사망하자 “노동당이 21세기의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선 변화하는 사회를 이끌 전략과 개혁이 필요하다”며 당권에 도전에 승리했다. 20세기 최연소 영국 총리(1997), 노동당 사상 처음으로 임기를 채운 뒤 연임에 성공한 총리 등 ‘기록의 사나이’로 자리매김한 그가 영국과 유럽,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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