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카를로스 메넴 정권 시절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극복을 주도해 명성을 떨친 뒤 올 3월 다시 입각한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은 각료회의 뒤 “긴축정책의 시행으로 경제는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이라며 “금융시장이 혼란스럽더라도 신뢰와 안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니엘 막스 경제부 차관은 “아르헨티나는 대외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다”면서 “정부는 추가로 35억달러의 채권을 발행해 올해 자금 수요를 충족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가는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경제안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집권 연정 내 핵심인물인 라울 알폰신 전대통령도 대책의 효과에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공지출 감소와 조세범 처벌 강화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페소화 가치 평가절하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피해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르헨티나의 최대 교역국이자 남미 제1의 경제대국인 브라질은 최근 가뭄으로 인한 에너지난과 급증하는 경상적자로 경제가 어려운 판에 마치 ‘핵펀치’를 맞은 표정. 레알화 가치는 12일까지 사흘 연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 올초에 비해 31%나 평가절하됐다. 브라질은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지원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12일 주식시장은 회복기미를 보여 보베스파 지수가 전날보다 104.16포인트 오른 13,916.00으로 마감됐다. 클라우디우 로서 IMF 서구담당 이사는 “브라질은 이미 아르헨티나의 위기에 전염됐지만 아직도 시장접근이 용이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기회가 있다”고 평가했다.
평소엔 남미경제의 영향을 덜 받는 멕시코 주식시장도 휘청거렸다. 12일 IPC지수는 전날 대비 1.42% 떨어진 6,470.88로 마감했다. CNN방송은 “미국 투자자들이 우량주식까지 대거 팔아치웠다”고 전했다. 이날 페소화 가치도 미 달러당 9.355페소를 기록해 1년 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재정적자가 주요원인" 손상찬 KOTRA 무영장관 인터뷰 ▼
손상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은 13일 본보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아르헨티나는 재정적자의 심화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정치 불안으로 외국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재정적자가 크게 늘어난 게 주된 원인이다. 최근 수년간 한 해 150억달러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부터 지원을 중단했다. 정부는 거래세 등 각종 세금을 신설해 조세수입을 늘려왔으나 이제 한계에 달했다. 한마디로 돈이 들어올 곳이 없는 셈이다.”
-정치적 불안도 경제위기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르헨티나는 여소야대다. 10월 총선에서 의석의 절반을 바꾸게 된다. 정치인들이 선거에 정신이 없다. 게다가 얼마 전 카를로스 메넴 전대통령이 무기 밀매 혐의로 가택연금에 처하자 그를 지지하는 거대 야당측이 ‘정치적 탄압’이라며 반발, 정국이 극도로 혼란스럽다.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사퇴설도 나돌고 있다.”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은 없나.
“최근 단기외채 300억달러를 장기외채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총외채 1280억달러의 대부분이 장기외채이기 때문에 디폴트의 염려는 없다고 본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는 52억달러이고 현재 외환보유고는 250억달러 정도 된다. 또 아르헨티나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수출에 의존하는 경제가 아니다.”
-향후 경제 전망의 최대 변수는 무엇인가.
“미국 등 외국투자자들의 신뢰도 회복이다. 월가의 금융가들이 아르헨티나의 경제상황과 정국을 안 좋게 보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는 11일 공공지출 감축을 주내용으로 하는 초긴축 재정정책을 발표했으나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외국자본들은 미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남미와 아시아의 신흥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아르헨티나 경제는 미국 달러가 이끌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모두 달러 부채를 갖고 있을 정도다. 만약 신뢰도 추락으로 외국자본이 유출되고 화폐가치가 평가절하되면 대외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돼 경제가 붕괴될 것이다. 그러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