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한인리포트(下)]한국기업의 명암

  • 입력 2001년 7월 17일 18시 56분


카자흐스탄 알마티 외곽의 말라조지나야 거리에 자리한 LG전자공장. 1만2000평 규모에 300여명의 종업원이 일하고 있다. 이 공장은 굴착기 공장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연간 50만대의 TV를 생산한다.

사실 이 공장은 극적으로 탄생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에 투자를 마쳤기 때문. 김한기 부장은 “조금만 늦었으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한파’로 투자 계획이 백지화될 뻔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한인리포트▼
- 다수민족 득세…생존경쟁 치열 (上)

시작부터 운이 따랐던 이 공장은 첫 해부터 줄곧 흑자를 내고 있다. 인지도에 있어서도 일본의 소니를 앞지르는 등 선점 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LG는 카자흐스탄에 투자한 외국기업으로는 드물게 제조업에 뛰어든 경우. 카자흐스탄은 석유(매장량 세계 5위)를 비롯해 우라늄, 텅스텐(이상 1위)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고 있어 대부분의 외국투자는 자원개발에 집중돼 있다.

가장 성공한 외국계 기업으로는 삼성이 최대 주주로 있는 카작무스가 꼽힌다. 이 회사는 중부지방의 제스카즈간 구리광산을 중심으로 채광에서 제련까지 하는 종합 구리광업사. 직원이 무려 6만2000여명이나 된다. 삼성은 소련 해체 후 거의 파산상태이던 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 지금은 카자흐스탄 전체 수출의 8%, 정부 재정의 4%를 차지할 정도의 초우량기업으로 키웠다.

서방과 일본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을 때 개방 직후부터 과감히 중앙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한국기업의 활약은 눈부시다. 그러나 모든 한국기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중심가. 무더위를 뚫고 도심을 달리는 승용차 대부분이 넥시아와 티코 등 대우차다. 이 나라 자동차의 90%가 동부 아사카의 대우 현지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대우는 자동차 외에 전자, 금융(우즈대우뱅크), 이동통신(유니텔) 등에도 지배력이 막강했다. 한때 “대우를 통하면 이 나라에서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그룹이 공중 분해된 후 대우의 위상도 급락했다. 많은 주재원들이 철수했고 사업 규모가 크게 줄었다. 대우가 벌여놓은 대부분의 사업 전망도 불투명해졌다.

현지에 남은 대우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주범’이란 국내외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한 듯 말을 아꼈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서 모래바람과 싸우며 자동차공장을 세우고 죽어라 일한 죄밖에 없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다른 한국기업 관계자들은 대우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위기를 자초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모그룹의 몰락과 상관없이 무모할 정도로 대규모 투자를 할 때부터 주위의 우려가 컸다는 것이다.

한국기업의 명암이 엇갈리긴 하지만 중앙아시아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삼성물산 윤승환 과장은 “중앙아시아는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신흥시장인 데다 러시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슈켄트·알마티〓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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