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美 배아연구 중단 촉구

  • 입력 2001년 7월 24일 18시 48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중단하도록 촉구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있은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했다가 22일 가족과 함께 로마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은 23일 로마 근교의 휴양지에서 교황과 처음으로 만났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교황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이 추구하는 자유롭고 도덕적인 사회는 인간의 생명이 수태되는 순간부터 자연사(自然死)할 때까지의 어떤 단계에서도 인간의 생명을 평가절하하거나 모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양심이 땅에 떨어져 안락사, 유아 살해 등의 사악한 일을 묵인하게 됐으며 최근 연구 목적의 인간 배아 배양도 마찬가지”라며 부시 대통령에게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미 연방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거절하라고 촉구했다.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비 지원 여부를 곧 결정해야 하는 부시 대통령은 나중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합동기자회견에서 “교황의 말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인간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 지원할 경우 미국 내 4400만 가톨릭 신자가 그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있으며 만일 지원을 중단하거나 제한하면 종교 지도자나 보수 세력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들을 처지에 놓여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배아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뒤 2개월이 안된 초기 생명체로 이로부터 얻은 줄기세포는 신체 모든 기관의 세포로 자랄 수 있다.

따라서 줄기세포 연구는 당뇨병, 알츠하이머병, 화상(火傷) 등의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교황을 비롯해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들은 “줄기세포 추출은 그 과정에서 생명체인 배아가 파괴되기 때문에 낙태와 마찬가지”라며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유산된 태아나 냉동 보관된 배아로부터 추출한 줄기세포에 한해서만 연구를 허용하고 있지만 인간배아 연구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도 많다.

2001년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브라질 페루 등은 인간배아 복제를 포함해 인간배아 연구 자체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편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하는 교황은 이날 미국의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바티칸의 한 관계자는 “부시 대통령과 교황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알고 있는 상황에서 교황이 굳이 이 문제를 꺼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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