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의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난 지 56년이 되는 올해, 한국인들은 최근 수십년간 이뤄낸 발전에 대해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앞으로 닥칠 도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1945년 당시 한국은 태평양전쟁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보아 가난에 찌든 국가였다. 5년후 남한은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던 와중에 북한의 침입으로 인해 또 다른 갈등에 휩싸이게 됐다. 6·25전쟁으로 남한과 북한은 완전히 파괴됐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등장한 후에야 남한은 경제 발전에 본격 진입할 수 있었다. 박 전 대통령은 강한 사명감을 갖고 독재 정치를 경제 발전과 결합시켰다.
그후 한국 정치는 독재주의에서 정치적 개방으로 서서히 발전해나갔다. 경제적으로 급속한 발전을 이룬 한국은 90년대 들어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면서 북한을 월등하게 추월했다. 한국은 아시아의 성공 사례로 떠올랐다.
그러나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한국은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치적으로는 현대적인 정치 시스템과 구시대적인 정치 문화를 어떻게 결합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둘 사이의 격차는 매우 심각하다. 한국은 지금 경쟁선거, 광범위한 시민 자유, 법치주의가 공식적으로 가동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과거의 유물이 많이 남아있다.
▼글 싣는 순서▼ |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 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7.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
지역주의는 아직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당면한 정책 이슈들을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이 어느 지역 출신인가 하는 것이 선거 결과와 이에 따른 보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 한국 정치에서 정치인 개인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경쟁 관계에 있는 정치인들간의 투쟁이 정치 무대를 주름잡고 있으며 이들 간의 인신 공격은 이제 일상사가 돼 버렸다. 이런 일들은 많은 국민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고 있다. 민주주의 실현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지도자들마저 통치행위에서 독재적 잔재를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는 한국 민주주의의 한 단면이다.
경제적 도전 역시 존재한다. 아시아 경제 위기 때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했고 금융 및 기업 부문의 가혹한 개혁 조치는 고통스러웠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2000년 한국은 8.8%의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국내적 압력으로 인해 개혁의 기세는 꺾인 듯하다. 일부 재벌의 과도한 부채 등 심각한 문제들은 아직 개선되지 않았으며 정보기술(IT) 산업의 성장은 지지부진하다. 수출은 급격히 감소했으며 외국인 투자는 시들해지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4%대로 지난해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한국 경제의 침체는 미국 유럽 일본의 경기 위축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체제를 타파하고 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경제적 세계화의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한국은 기업권의 경쟁력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한편 젊은 창업가들로 하여금 과학기술 발전에 도전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외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부패 척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이제 끝내야 할 때다.
정치적으로는 국가적이고 이슈 중심적인 정치의 발전을 꾀하고 외교 등 주요 정책의 형성 과정에서 합의를 도출하는데 힘써야 한다. 최근 수년간 한국은 외교정책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역사 왜곡 교과서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으로 인해 적대감이 일고 있는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강대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1945년 이후 어느 때보다도 좋은 상태이다. 미국과도 탄탄한 안보동맹을 유지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남북한 관계는 경제적으로는 진전을 이루고 있지만 정치전략적 측면에서는 고착 상태에 빠져 있다. 북한측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인질로 만들었다. 특정 시점이 되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다시 진전을 이룰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북한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들의 이해관계 증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남한은 국내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인다면 북한과의 협상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삶과 안정된 미래를 누리고 있으며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당면한 정치 경제적 문제들과 싸워나가는 것은 지도자와 국민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만약 이같은 도전에서 승리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1919년 출생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UC 버클리대 교수 겸 동아시아연구소장
△북한 4차례 방문(89∼95년)
△미 학술원 회원
△UC 버클리대 명예교수(현)
<정리〓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니시무라 요시마사 교수▼
대장성 은행국장으로 재임하면서 금융위기 처리 문제로 고심할 때 미국인들로부터 호의적인 충고를 많이 들었다. 그때 남의 나라 일은 겉모습밖에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또 특정 해법이 필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실행이 어렵다는 점에서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한국의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일본이 직면한 문제와 아주 비슷하다는 데 자주 놀란다. 그러므로 일본의 고민은 한국에도 어느 정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일본은 1991년 경기침체가 시작됐을 때 그 원인이 80년대 후반의 거품경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거품 붕괴가 끝나면 몇 년 후 다시 힘을 되찾을 것이며 그때까지는 재정이나 금융면의 비상조치도 어쩔 수 없다고 예상했다. 그러는 동안 10년이 지나고 말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활력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대로는 일본 경제가 더욱 어려워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내건 구조개혁의 배경에는 이런 반성과 초조함이 있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일본의 경제발전은 세계적 정치 경제 환경에서 지나친 혜택을 받아왔다. 일본은 그것이 자기 실력 덕분이라고 과신해 왔다. 미국만을 따라가며 열심히 흉내낸 끝에 80년대에는 ‘저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umber 1)’이라는 칭송을 받았지만 거기에 만족한 나머지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을 게을리 했다. 미국을 흉내내기는 가능했지만 미국을 뛰어넘으려 할 때는 두꺼운 장벽에 부닥친 것이다. 그 결과가 90년대 장기불황으로 나타났다.
80년대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해온 한국도 같은 상황이다. 일본의 거품 붕괴에 해당하는 것이 아시아의 통화위기다. 이는 국제자금의 급격한 이동이나 단기적인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지나치게 순조롭던 고도성장 경제구조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일본은 그것을 깨닫는 데 10년도 더 걸렸지만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통화 위기후 신속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집권 초기 전면적인 경제 구조 개혁을 내걸었다. 그것은 일본도 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과감한 내용이어서 내 스스로도 경외감을 가졌다. 그러나 그 후 추진과정을 보면 기대만큼 진전되는 것 같지는 않다.
부실 채권 문제 등으로 고심하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과거의 경제 난제를 신속하고도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우선 급선무다. 그러나 과거 문제 정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시에 향후 어떻게 세계 경제 속에서 더 발전해 나갈 것인가 하는 전향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이 미국의 뒤를 따르기만 했던 것처럼 한국은 일본 상품을 모방하며 성장해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일본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일본을 추격하는 단계를 넘어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일본은 뒤늦게 그런 자각은 했지만 충분히 실행하지 못해 결국 미국을 뛰어넘는 데 실패하고 주저앉았다. 추격 대상을 뛰어넘으려면 그 나라 이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은 일본의 전철을 되밟아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에게 가장 경계의 대상이 되는 나라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지금까지는 저임금 등을 토대로 순탄하게 발전해왔지만 이미 중국의 추격을 받는 입장에 처하게 됐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까지 이뤄온 것은 누구라도 흉내가 가능하다. 어쩌면 한국이나 일본이 했던 것보다 더 빨리 따라올지도 모른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에는 명실공히 ‘세계의 공장’으로서 무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최근의 경기악화를 미국??주도하는 세계경제의 악화 탓으로 돌리려 하는 것 같다. 물론 어느 나라도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일단은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영향을 가급적 받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수동적인 자세에 불과하다. 세계경제가 악화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기만의 전략이 없으면 언제까지나 외부적인 요인에 책임을 미루게 된다.
한국은 정보기술(IT)분야 중에서도 브로드밴드 등 인터넷 관련 부문에서 일본을 이미 추월했다. 지금까지의 값싼 공산품을 중심으로 한 ‘저가격 경쟁력’을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어렴풋하게나마 희망의 빛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IT분야는 세계적으로 기력을 잃고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 ‘만능의 구세주’라고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한국으로서는 IT분야에서 엿보인 가능성에서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전체 경제구조의 방향을 ‘양적인 추월’에서 ‘질적인 추월’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험을 또 하나 덧붙이자면 생산연령인구 감소도 경제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 이는 21세기 최대의 난제다. 일본의 고도성장은 생산연령인구의 급증으로 지탱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장기불황으로 접어들었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독일 이탈리아 등이 90년대 1%대의 저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출산율 저하의 결과다. 이런 현상은 다소 시차는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반드시 발생한다. 인구대책은 경제 발전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근간이 된다.
한국과 일본은 두 나라 모두 고통을 동반한 구조 개혁을 추진중이다. 이미 각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충분히 논의됐으며 스스로가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나아가야 할 길은 단 한가지, 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면 바로 뒤에서 추격해오는 국가들에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다.
니시무라 요시마사(西村吉正)
△1940년 일본 시가(滋賀)현 출생
△도쿄(東京)대 법학부 졸업
△유럽공동체(EC) 일본 대표부 참사관 역임
△1994년 대장성 은행국장으로 퇴임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와세다(早稻田)대 대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과 교수(현)
<정리〓이영이도쿄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