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키시마號 희생자 합동위령제]"돈 몇푼보다는 日정부 사죄를"

  • 입력 2001년 8월 24일 18시 29분


일제에 강제 징용된 수많은 한국인의 목숨을 앗아간 우키시마마루(浮島丸)호 폭발사고에 대해 일본 교토(京都)지법이 23일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다음날인 24일은 마침 사고 발생 56주년을 맞는 날.

우키시마마루호 폭발사고 생존자 4명과 유족 등 200여명이 이 사고를 소재로 한 북한 영화 ‘살아있는 영혼들’의 시사회를 겸한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 남산동 한국영화감독협회 시사실을 찾았다.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이번 판결이 우키시마마루호 사고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고 반기면서도 “일본 정부가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지 않고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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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6일 만에 일본 아오모리(靑森)현의 한 군용비행장 활주로 공사에 강제 징용됐던 소중규(蘇重圭·79·서울 노원구 하계동)옹은 “우키시마마루호의 폭발로 배에 타고 있던 3735명의 한국인 중 524명이 숨졌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는 명백한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소옹은 “1943년에 함께 징용된 20여명의 고향(전북 익산시 망성면) 사람 중 살아 돌아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3명에 불과했다”며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허가없이 승선한 사람까지 포함해 모두 8000여명의 한국인 징용자들이 배에 타고 있었고 이들 중 5000여명이 이 사고로 숨졌다”고 말했다.

군수품 하역작업에 강제 징용됐던 이철우(李鐵雨·76·충남 아산시 배방면)옹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부딪혀 배가 폭발했다는 일본측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이옹은 “사고가 발생했던 45년 8월 24일 배가 폭발하기 20여분 전부터 일본인들이 운항을 멈추고 구명보트를 바다에 내려 옮겨 타기 시작했다”며 “부산에 입항할 경우 한국인들의 보복으로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생각에 일본인들이 배를 고의로 폭파시킨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생존자들과 유족들은 한결같이 “돈 몇 푼 받자고 소송을 낸 것은 아니다”며 일본 정부가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고 생존자들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국내에서 진상규명 활동을 주도해온 ‘우키시마마루호 폭침 진상규명회’회장 전재진(田在鎭·44·천안 순천향의대 임상병리사)씨도 이번 판결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93년 일본에서 열린 반핵 아시아 포럼에 참석했다가 한 일본인 시민운동가를 통해 이 사고를 처음 알게된 전 회장은 95년 ‘진상 규명회’를 만들어 강제징용 현장을 찾아 증언을 확보하고 이듬해에는 손해배상소송 원고단에 생존자 24명을 추가하기도 했다.

전 회장은 북한측과 공동으로 정확한 피해자 조사 및 사고원인 규명과 추가 소송제기, 유골송환 등에 나설 계획이다.

<현기득기자>rati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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