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 17일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대표단을 보내 탈레반 정권측에 오사마 빈 라덴을 사흘 내로 인도하도록 설득하기로 했다. 파키스탄의 이 노력이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지만 대결국면으로 치닫던 테러위기에 가느다란 중재의 기회가 나타난 것이다.
파키스탄으로서는 협상이 실패한다 해도 그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이슬람 형제국’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마지막 성의를 보인 것으로 이슬람권에 비쳐질 수 있다는 과실을 챙길 수 있다.
이와 함께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르면 17일 인접 우방인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중국측에 중국 국경 근처에서 벌어지려는 무력 충돌을 불가피하게 지원해야 하는 경위를 설명할 것으로 예상한다.
외신들은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공격 준비와 관련해 유엔안보리 결의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경위와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은 유엔안보리이사국으로 미국과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여서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을 대신해 중국측에 이번 사태에 대한 이해를 구할 것이라는 것.
무샤라프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 이어 이슬람 종주국격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방문한다. 이는 같은 이슬람국인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는 미국의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16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왕세자와 전화 통화를 갖고 테러 사건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 대해 논의했으며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파키스탄 국영방송이 보도했다.
파키스탄의 행보는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파악된다. 파키스탄은 이번 테러를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상당한 구애를 받고 있다.
즉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의 공격을 지원해 주는 대신 외교적 경제적으로 최대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중국과의 접촉에 나서기로 했다는 분석이다.
샤우카트 아지즈 재무장관은 16일 AFP통신과의 회견에서 “이번 기회를 계기로 미국 정부가 파키스탄에 많은 돈을 제공해 양국간 경제적 유대관계가 커질 것으로 확신한다”며 파키스탄이 기대하는 과실에 설렘을 내비쳤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주변국과의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 가운데에는 쿠데타로 집권해 국제무대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 아픔도 들어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외교적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는 있으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순순히 빈 라덴을 인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이미 파키스탄을 겨냥해 미국을 지원하면 보복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파키스탄은 방패막이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는 전제조건으로 유엔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압둘 사타르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15일 “테러리즘에 대한 대처에는 적극 협력하겠지만 국경선 밖에서 벌어지는 군사행동에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파키스탄의 역할을 못박기도 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